[기억할 오늘] 1967년 캘리포니아의 '사랑의 여름'

1967년 6월 미국은 거대한 두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캘리포니아 히피 청년들의 반란과 중남부 및 북동부를 휩쓴 연쇄 인종 폭동. 이른바 ‘사랑의 여름(1967, Summer of Love)’과 ‘길고도 무더운 1967년 여름(Long, hot summer of 1967)’이었다.
그해 여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10만여 명의 (대부분)백인 히피 청년의 축제로 가히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공권력은 거의 무력했고, 사실 개입할 명분도 불분명했다. 계기라면 66년 10월 단행된 캘리포니아 정부의 미국 최초 LSD 불법화였다.
종교적 성수처럼 여기던 그 환각성 마약을 빼앗기게 된 청년들의 항의 집회가 잇따랐고, 집회는 이듬해 1월부터 ‘휴먼 비인(Human Be-In)’이라 불린 축제로 변모했다. 세상의 낡은 질서를 허물고 계급(계층) 피부색을 초월해 모두가 인간으로, 또 사랑으로 한데 어울리자는 의미의 캐치프레이즈. LSD와 대마초 등과 함께한 그들의 ‘휴먼 비인’은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이자 그들만의 르네상스였다. LSD 구루 티머시 리어리가 "켜고, 듣고, 빠져들자(turn on, tune in, drop out)"는 저 유명한 구호를 처음 외친 것도 1월 14일 골든게이트파크 축제에서였다.
봄방학을 맞아 청년들이 몰려들자 일종의 자치기구인 ‘사랑의 여름 위원회’란 게 만들어졌다. 위원회는 최소한의 질서와 안전을 위해 6월 무료 진료소를 개설했다. 당국의 ‘부랑자 단속법’에 맞선 무료 합숙소와 생필품을 나눠주는 ‘free shop’들이 생겨났고, 헤이트 애시버리(Haight-Ashbury)를 중심으로 한 도시 곳곳에선 ‘몬터레이 팝페스티벌’을 비롯한 크고 작은 록-사이키델릭 음악과 춤 공연이 이어졌다.
계절이 바뀌면서 사랑의 여름도 식어갔다. 10월 6일 마지막까지 남은 히피-주민들은 빈 관을 메고 헤이트 애시버리의 거리를 행진하는 ‘히피 장례식’으로 그 여름과 작별했다.(계속)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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