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49] ‘천편일률’과 도깨비 고을

둔중한 물건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누른다는 뜻의 글자가 진(鎭)이다. 그 의미에서 한 걸음 나아가, 군사적 필요에 따라 설치한 구역이라는 뜻도 얻었다. 나중에는 행정상 한 지역 이름으로도 발전했다. 우리 식으로 설명하면 ‘고을’이 옳을까 ‘마을’이 맞을까. 인구가 적고 농경이 주를 이루는 마을보다는 저잣거리가 있고 상업 행위가 빈번한 고을 정도가 그에 합당한 풀이일 듯하다. 현대 중국에서는 가장 아래 행정구역 명칭이다.
그런 중국의 옛 고을을 고진(古鎭)으로 적는다. 요즘 관련 소식을 보면, 이미 조성했거나 단장 중인 중국의 고진은 자그마치 2800여 곳이다. 바로 위 행정구역인 현(縣)은 1500여 곳 정도다. 한 현에 둘 정도 고진이 있다는 얘기다. 요즘 중국어권 매체들은 명소였던 옛 고을의 터에 들어선 이 많은 관광지를 귀진(鬼鎭)으로 치부한다. 짓고서도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를 귀성(鬼城)이라고 적는 이유와 같다. 역시 자원 낭비의 대표적 사례다.
이 숱한 고진의 거리 곳곳은 천편일률(千篇一律)이라는 성어가 지배한다. 수많은 문장이 모두 같은 소리를 낸다는 뜻의 성어다. 같은 가게, 비슷한 거리, 유사한 주택 등이 들어서 한번 들른 사람은 다시 이곳을 찾지 않는다. 그러니 한곳에 수천억 원을 들여 만든 고진은 관심을 받지 못해 도깨비들만이 거니는 곳으로 변했다. 사람의 개성, 지리의 특성, 인문의 다양성 등을 죄다 무시한 관 주도 행정의 폐단이다. 중국식 발전은 늘 이런 병증을 안고 있다.
무게로 짓누른다고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고진의 ‘진’은 마침 진압(鎭壓)이라는 단어로 이어진다. 고진의 문제가 이제 불거지듯, 중국이 지닌 체제적 병폐는 당국의 진압을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유혈로 진압한 6·4 천안문 사태가 곧 36주년이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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