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괴목에 가서
실재보다도 더 속속들이 묘사
내 작품 속 ‘상상의 괴목’ 가보니
내가 그리던 ‘산골의 정취’ 물씬
괴목(槐木)은 순천 북쪽에 있는 산간마을이다. 송치, 계월, 백야, 상수평 같은 마을을 지나 구례로 가는 길목에 있다. 언제부터 그곳이 마음속에서 그리운 곳으로 자랐는지 모른다. 갯가에서 자라서 유달리 산촌에 끌리곤 했지만 괴목은 발 한 번 디뎌보지 못한 곳이었다. 전라선 타고 오르내릴 때면 괴목역이라는 기운 센 이름을 지나고, 고등학생 때는 거기서 온 동무들이 있어 멀고 깊은 어느 두메쯤으로 그리곤 했다.

당신 소설의 어느 지명은 알겠는데 아무 데는 어딘지 모르겠다고 묻는 고향 사람들이 있다. 한참 소설 무대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설명하면 속은 느낌이 드는가 보다. 그렇지만 그 허구의 공간을 나는 실재하는 공간보다 더 속속들이 묘사할 수 있다.
나는 괴목에 가보지 않고 소설에서 무대로 활용한 적이 있다. 내 마음속 괴목은 지리산 산중보다 더 산골 같고, 급기야 남도에서 가장 깊은 곳처럼 여겨졌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고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라는 백석의 평안도 벽지 같아도 보였다. 순박한 사람들이 거친 삶을 치러내는 곳일 게다.
내가 한껏 상상한 괴목은 옛날에는 나무장(場)이 서는 곳이다. 지리산 줄기에서 날라 온 기둥 같은 나무들이 강가에 수북하다. 벌목공 후손들이 화전을 일구고,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장에 내오고, 장에는 털이 숭숭한 돼지국밥집이 있다. 장이 서면 산민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골짜기에는 장작 타는 매운 내가 가시지 않고, 겨우내 발 묶인 사람들이 어깨를 털며 국밥을 말고 소주를 마신다.
멀리서 친구 둘이 찾아왔고 나는 마침내 괴목에 갔다. 공교롭게도 하나는 제주도에 하나는 영종도에 사는 섬 친구들이라 산골 그리는 마음이 나 못지않았다. 괴목은 내 괴목과는 같지 않지만 아주 다르지도 않았다. 괴목역은 폐역이 된 지 오래였고, 삼거리에서 돌아든 시장통은 한산했다. 노포는 천막을 내리고 있었고, 도마를 깎는 장인의 연마기 소리만 유난했다.
순댓국밥집이 세 군데나 가마솥을 걸어놓고 있었다. 하나는 원조고 하나는 80년 전통이라고 간판을 내걸었는데 진짜 원조는 뒷골목에 있다는 귀띔도 있다. 이쯤이면 원조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시어미에게서 장사를 물려받았다는 주인이 옛날 피순대를 내놓는다. 머릿고기와 내장, 순대에다가 부추를 데쳐서 올려놓는다. 방앗잎 부각도 있고, 젠핏잎 부각도 있다. 젠피는 초피를 부르는 전라도 방언이다. 도톰하게 찹쌀을 입힌 젠핏잎 부각에서 산골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어디선가 오래전에 맡은 저녁 냄새가 난다. 목로에 막걸리를 놓고 앉았자니 낯익다. 아무래도 여기는 내가 그리던 괴목이 맞다. 여기서 한 철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해도 좋을 듯하다.
전성태 소설가·국립순천대교수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텅 빈 쌀통에서 71억”…조정석·남궁민·안보현, 공사장 전전한 배우들의 ‘훈장’
- ‘200억 전액 현금’ 제니, 팀내 재산 1위 아니었다! 블랙핑크 진짜 실세 따로 있다
- “스타벅스 빌딩까지 다 던졌다” 하정우, 7월 결혼설 앞두고 터진 ‘100억원’ 잭팟
- “100억 빌딩보다 ‘아버지의 배’가 먼저”… 박신혜·박서진·자이언티가 돈을 쓰는 법
- 침묵 깬 김길리, 빙상계 ‘발칵’ 뒤집은 ‘최민정 양보’ 루머에 직접 입 열었다
- “1년 내내 노란 옷 한 벌만” 정상훈, 14번 이사 끝에 ‘74억’ 건물주
- “통장에 1600만원 찍혀도 컵라면 불렸다” 박형식, ‘식탐’ 소년의 눈물겨운 억대 보상
- “비데 공장 알바서 45억 성북동 주택으로”… 유해진, 30년 ‘독기’가 만든 자수성가
- “매일 1만보 걸었는데 심장이”…50대의 후회, ‘속도’가 생사 갈랐다
- “부모님 빚 갚고 싶었다”… ‘자낳괴’ 장성규가 청담동 100억 건물주 된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