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K] “내일은 내가 죽을 수도”…대불산단 노동자의 탄식

KBS 지역국 2025. 5. 2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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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오랜 불황을 뚫고 호황을 맞이한 조선업.

관련 공장이 밀집한 영암 대불산단도 활기가 감돕니다.

하지만 늘어난 일감만큼, 일터는 더 위험해졌습니다.

여러 차례 겪은 동료들의 죽음, 노동자들이 생명을 운에 맡기는 이유입니다.

["내일은 내가 또 죽을 수 있겠구나."]

["여기서 일하는 동안은 운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근데 가족들은 많이 걱정합니다."]

제 뒤로 보이는 거대한 선박 한 척을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하청 노동자들의 조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가슴 아픈 희생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올해만 대불산단에서 한 달에 한 두 명 꼴로 사망 사고를 당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영암 대불산단에서 선박 구조물을 제조하는 A 업체.

멈춰 선 지게차 주변으로 119 구조대 차량도 눈에 띕니다.

지난 23일 오전 9시쯤 이 공장에서 40대 하청 노동자 최 모 씨가 지게차에 깔려 숨졌습니다.

철판을 싣고 움직이던 지게차 운전자가 최 씨를 발견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현장에 안전 관리자가 있었는지, 안전 수칙이 지켜졌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유가족/음성변조 : "저는 저희 아빠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불산단에선 2023년 5월과 8월에도 지게차 사망 사고가 났습니다.

[손상용/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준) 운영위원장 : "단독 작업하는 과정들 속에서 집중하다 보니까 주변에 노동자가 지나가더라도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까…."]

이번 사고는 단순히 위험한 작업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라 나옵니다.

무엇보다 조선업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사고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고가 난 곳은 A 업체, 하지만 지게차 운전자는 A 업체의 하청을 받은 B 업체, 즉 1차 하도급 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여기에, 숨진 최 씨는 또 다른 1차 하도급 업체의 하청을 받은 C 업체, 즉 2차 하도급 업체 대표였습니다.

하도급 구조의 최하단에 있는 C 업체 같은 곳을 조선업계에선 '물량팀'이라고 부릅니다.

일감이 있을 때마다 부정기적으로 꾸려져 특정 공정을 담당하는 역할입니다.

최 씨는 업체 대표였지만 사실상 '물량팀'의 '팀장' 역할로, 1차 하도급 업체와 원청의 지휘를 받으며 일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감이 있을 때마다 일터를 옮겨 다니는 물량팀 노동자들은 빠듯한 공기를 맞추기 위한 속도전이 일상이라고 말합니다.

[하청 노동자 ㄱ씨/음성변조 : "시간이 돈인데 물량팀은, 같은 시간 안에 일을 많이 해야 되는데 이게 위험하니까 '바꿔주세요' 하면 바꾸는 동안 작업이 안 되잖아요. (사업주는) 이 사람을 계속 고용할 이유가 없죠."]

작업 속도를 올릴수록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물량팀 노동자들은 4대 보험 미가입률이 높아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웬만한 사고는 산재 처리조차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청 노동자 ㄱ씨/음성변조 : "사망 사고만 지금 보고돼서 그렇지, 골절 사고 같은 건 보고도 안 되잖아요."]

금속노조는 원청 A업체와 관련한 노동자 3백여 명 중 물량팀 소속 노동자가 70%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일상이 된 조선업의 다단계 구조, 노동자 보호는 물론 사고 책임자 처벌도 쉽지 않습니다.

[정호철/전국금속노동조합 전남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 "중대재해의 구조적 원인은 명확합니다. 다단계 불법 하도급 위험의 외주화, 원청 경영 책임자의 무책임, 고용노동부의 부실 감독 때문입니다."]

조선업 특유의 다단계 하청 구조, 그리고 복잡한 인력 고용 형태가 산업재해 사고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피해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게차 사고가 나기 불과 엿새 전, 서남권 최대 조선소인 HD현대삼호중공업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

숨진 이는 역시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사다리에서 작업하다 내려오며 개구부의 덮개를 밟았는데, 덮개가 2.7미터 아래로 떨어지며 함께 추락한 겁니다.

덮개가 규격에 맞는지, 제대로 고정됐는지 확인만 했어도 예방할 수 있던 사고입니다.

하청 노동자들은 평소 이런 덮개를 알아서 피해 다녔다고 말합니다.

현장에서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사고가 날 때까지 조치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청 노동자 ㄴ씨/음성변조 : "우리도 개구부는 안 밟아요. 밟으면 죽을 수도 있고 아예 안 밟아요. 뚜껑이 있어도 아무튼 아예 안 밟아요."]

노동청 집계 결과 최근 3년 동안 대불산단에서 숨진 노동자는 10명.

이 가운데 하청 노동자가 8명, 무려 80%를 차지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업체 소속 노동자도 3명 숨졌습니다.

조선업 호황기인 올해에만 사망 사고 6건이 발생하는 등 산재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 안전 관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게 노동자들의 증언입니다.

[하청 노동자 ㄴ씨/음성변조 : "하청업체마다 또 안전 관리(자)를 새롭게 고용을 했어요. 근데 문제는 이분들이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심지어 일도 해요. 생산에 참여하시기도 하는 것도 제가 직접 보기도 했거든요."]

안전 대신 비용 절감과 수익을 선택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목격해 온 노동자들.

희망보다 체념과 포기가 익숙해졌습니다.

[하청 노동자 ㄴ씨/음성변조 : "현장에서 받아들이기는 '누가 재수 없어서 죽었구나' 위험이 일상화가 되다 보니까, 원래 이제 그런 게 있으면 좀 분노해야 되는데…."]

[하청 노동자 ㄱ씨/음성변조 : "이거는 10년 전에도 했던 얘기고 5년 전에도 했던 얘기고 저는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는 시늉을 할 거예요. 뭐 하겠다. 뭐 하겠다."]

취재진이 만난 대불산단의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장 안전에 대한 희망조차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말들만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목숨을 하나라도 더 지키기 위해선, 다단계 하청구조에 대한 근본적 검토와 면밀한 감독, 엄정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KBS 지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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