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들] 보편성과 특수성의 미학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All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아마도 전 문학사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꼽힐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총, 균, 쇠'로 유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성공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고,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했고, 지금까지 통계,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범인 중의 범인인 필자가 세계적 대문호의 저 문장을 읽고 '보편성과 특수성'을 떠올렸다고 하면 오독(誤讀)일지도 모르겠으나, 학생 시절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이상하게도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모든 인간 군상의 삶의 모습이 다른 듯 또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이 균형 있게 어우러질 때 보다 바람직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최후의 보루에 있는 것은 아마도 사법 시스템일 것이다.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의 영역에서도 '보편성과 특수성'은 중요한 가치이다. 모든 국민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령에 따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판결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다만, 인간사가 모두 같을 수는 없기에 그 안에서 각자가 가진 사연들을 반영하는 특수성이 절묘하게 함께 고려되길 바란다.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찾기 위해 아이를 반으로 나누겠다는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판결도 상호 소유권을 주장하는 두 사람 모두의 권리를 인정하여 원칙적으로 구분 소유하도록 하되, 친 엄마의 사랑이라는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여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낸 것이 아닌가. 반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속 장발장은 굶주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하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전 세계 독자들의 공분을 산 판결이 아닐까 싶다.
사법기관 뿐만 아니라 제4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언론기관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특수한 사례를 사회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보도한다면 여론을 호도하는 기사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모두가 알만한 사실들만 기사화하는 것 역시 기자정신이 아쉬운 기사라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정책 대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사항들을 토대로 정책을 수립해야 하지만, 정책적 지원이 꼭 필요한 대상이 보편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가 안전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특수한 사례들에 대한 고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런 노력이 있어야만 좋은 기사, 좋은 정책이 탄생할 것이라는 점에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 보자. 또 다른 독일의 대작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다작을 하기로도 유명했는데, "내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체험 그대로 쓰지 않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처럼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책들이 오래도록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은 시대마다, 국가마다 다른 상황에서 쓰였지만, 그 속에 흐르는 정신과 교훈은 세대를 넘어, 언어를 넘어 통용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수성 속에서도 보편성을 담는 책이 명저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남과 다르다는 '특수성' 속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도, 남과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듯하다. 우리 개개인의 삶도, 사회 시스템도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調和) 속에서 안정적이면서도 자유롭길 바란다.
이규호 법률사무소 강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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