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사전 투표 홍보하자···선관위 "시끄러울 수 있으니 주의하라" 전화
신체 장애인은 보조받을 수 있지만
선관위, 발달장애인은 지원 제외
당사자들 "우리도 청년이자 시민"
그림 투표용지·보조원 허용 호소

"발달장애인은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없습니다."
29일 오전 11시, 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 발달장애인 강수미(27)씨가 투표 보조인(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투표하겠다고 하자, 사무원은 공직선거법상 시각·신체장애인만 투표 보조가 허용된다며 보조인의 출입을 제한했다. 주변에선 "장애인이야?" "멀쩡해보이는데?" 등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이목이 집중되자 위축된 표정으로 기표소에 홀로 들어간 강씨는 한참 뒤 기표한 투표용지와 봉투를 들고 나와선 머뭇거리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사무원에게 물었다. '관외 선거인은 투표용지와 회송용봉투를 수령한 다음, 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기표 후 회송용 봉투에 넣어 밀봉 후 관외 투표함에 투입'이라는 문구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원은 강씨 대신 투표용지를 접어 밀봉 스티커까지 대신 떼어 붙여주려다 '본인이 직접 밀봉하도록 설명만 해야 한다'는주변의 만류에 멈췄다. 결국 사무원의 설명으로 강씨는 직접 밀봉을 하고 투표함에 기표 용지를 넣을 수 있었다.
강씨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사직동 투표소에선 발달장애인들이 투표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씨는 미리 주변의 도움을 받아 공약을 살펴본 뒤 지지하겠다고 생각해둔 후보가 있고, 이미 지난해 투표를 해보는 등 경험이 있었기에 도움 없이 기표까지 할 수 있었지만 중증도가 높거나 투표 경험이 적은 발달장애인들은 홀로 투표하기가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5년 전 없어진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2016년부터 4년 동안은 발달장애인도 투표 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선관위가 2020년에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라는 문구를 글자 그대로 엄격히 해석하면서 발달장애인 중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은 투표 보조를 받지 못하게 됐다. 발달장애도 중추신경계 등의 이상으로 촉발되는 만큼, 넓은 의미에서 ‘신체장애’로 볼 수 있다는 게 장애인단체의 입장이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보조원이 기표소 안에 함께 들어가 당사자가 투표 절차에 대해 질문하면 하나씩 설명해주고, 글을 모르거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 어떤 후보를 찍으려 하는지 묻고 안내하고, 꼭 찍고 싶은 칸에 한 번만 찍게끔 돕는다면 발달장애인 투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투표할 수 있도록 사진과 로고가 삽입된 투표 용지도 발달장애인들의 오랜 요구사항이다. 이미 영국(스코틀랜드), 대만, 홍콩, 영국, 이집트 등 여러 나라에 도입돼 있고, 한국도 1960년대에 사용한 적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은 "정당 로고와 후보자 사진 등을 이용한 그림 투표 보조용구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중앙선관위의 상고로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이번 대선에는 도입되지 못했다.

선관위의 황당한 경고
이승헌 사무국장은 이날 발달장애인 사전투표 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사전투표하러 갈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선관위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끄럽고 문제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이어 "선관위의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선관위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발달장애인도 투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발달장애인 김연아씨는 "저는 직장 노동자이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이기도 하고, 오염된 환경에서 살고 싶지 않은 청년이기도 하다"면서 "다음 선거에선 발달장애인들이 보다 쉽게 투표할 수 있도록 바뀌었으면 한다"고 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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