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저성장 진퇴양난… 이창용 "금리 빨리 내리면 집값 급등"

주형연 2025. 5. 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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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수출 둔화 예상… 금리 ↓
1%p 인하시 성장률 0.1~0.2%p↑
하반기 2번 추가 인하 전망 속
추경 미동반땐 부동산 자극 우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9일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인하한 후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대폭 낮췄다. [한국은행 제공]

한국 경제가 '0%대' 저성장 터널에 갇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한국은행마저 29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제시하며 저성장 시대를 공식화했다. 내수 부진에 미국 관세정책으로 인한 수출 둔화까지 겹쳐 0% 성장률이 장기화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해 2~3차례 추가적으로 내려 경기 부양에 나설 수도 있지만, 금리인하가 집값을 올리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반토막냈다. 잠재성장률(2.0%)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00년대 이후 연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0%대를 기록한 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과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0.7%) 등 두 차례뿐이다.

한은이 제시한 올해 성장률 0.8%는 IMF(국제통화기금)가 제시한 1.0%보다 낮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이 0.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수의 국내외 기관도 0%대 성장률 전망을 내놨다. JP모건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5%로 가장 낮게 봤고 골드만삭스와 HSBC는 0.7%로 제시했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역시 종전 예상치인 1.8%에서 1.6%로 내렸다. 올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인 1.9%를 유지하고, 내년 전망치는 1.9%에서 1.8%로 낮췄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춘 것은 '내수 부진'이 주요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건설경기 부진이 장기화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건설업 부진이 성장률 전망치를 무려 0.4%포인트(p) 낮춘 요인으로 작용했다. 민간소비도 성장률 전망치를 0.15%p 끌어내렸다. 수출의 성장률 전망치 기여도는 -0.2%p다.

세계경제에 대해선 연초보다 높은 수준의 미국 관세, 향후 협상 과정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성장세가 당초 예상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대내 여건은 정치 불확실 완화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도 개선 효과가 더딜 것으로 평가했다.

수출도 녹록지 않다. 이날 미국 연방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조치에 일단 제동을 걸었지만 우리 주요 수출 품목에 타격은 불가피하다.

한은은 미 상호관세가 무효화 되면 올해 성장률이 0.1% 남짓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미국 상호관세가 철회되고 품목 관세만 남을 경우 낙관 시나리오와 유사하거나 조금 더 좋은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무효화되고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뜻이다.

경기는 고꾸라지고 있지만 수단은 마땅치 않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추경이 예고되고 있지만 재정 적자에 여력이 많지 않다.

대대적인 기준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할 경우 집값 상승, 가계부채 증가 등이 우려된다. 한은이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계속, 큰 폭으로 금리를 낮추기는 어렵다.

한은은 일단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절벽이 현실화되자 이날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로 0.25%p 인하했다.

이 총재는 "당초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됐다. 앞으로 금리인하 폭이 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내 두 차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시장에서도 하반기 2회 추가 인하 전망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0.25%p씩 두 차례 더 낮추면 올해 말 기준금리는 2.00%까지 떨어진다. 2.00%의 기준금리는 2022년 6월(1.7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으로 1%p 기준금리를 낮추면 6~12개월 시차를 두고 한국 경제 성장률을 0.1~0.2%p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한은이 연내 8월과 11월 두 차례 더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추경 등 충분한 재정정책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 금리만 계속 내릴 경우, 경기 부양 효과는 미미하고 부동산으로 돈이 몰려 결국 집값과 가계부채만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이 총재는 '빅컷'(한번에 기준금리 0.5%p 인하) 기대감에 대해 경계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너무 빨리 낮추면 경기 부양보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코로나19 때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경기를 부양하면서도 어디에 얼마나 할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이 새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라며 "가계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유동성으로 인해 금리 정책이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는 문제 등과 관련해 (새 정부와) 공감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통화정책 완화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점도 한은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4.25~4.50%로 동결했다.

연준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염두에 두고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세 둔화, 실업률 증가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조금 더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미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 수준(2.00%p)까지 커진 상황에 한은만 인하 여지를 남기면서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 염두에 둔 최종금리 수준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3개월 이후 금리 경로의 명확한 지침을 공개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향후에 금리를 몇 번 더 낮출지 금통위원 생각을 밝힐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신 단기간 내 기준금리 1%대 도달 가능성은 부인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여전히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원화가치 하락 위험은 더 커졌다.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을 크게 밑돌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어렵게 1300원대로 안정된 상황에서 환율이 다시 뛸 경우 지난달 금통위처럼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싶어도, 통화 정책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주형연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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