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골프 실력만큼이나 똑소리 나는 박현경의 타고난 말재주

“타고난 것 같아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얘기만 하거든요.”
박현경(25, 메디힐)은 말을 참 잘합니다. 그 비결을 주위에 물었더니 김의주 KLPGA 홍보팀장과 골프 전문 사진기자로 늘 대회 현장을 지키는 박태성 기자 모두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필자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현경의 진가는 지난 25일 KLPGA투어 E1 채리티 오픈에서 우승한 직후 SBS 골프 채널과 진행한 생중계 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날 경기 여주 페럼클럽(대표 고문성) 에서 끝난 대회 최종 3라운드에서 박현경은 경기 막판 이채은과 일대일 매치 플레이처럼 숨 막히는 접전을 펼친 끝에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오렌지 재킷을 입었습니다.
이런 극적인 승부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면 흥분한 나머지 자신이 하고 싶은 소감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거나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먹이느라 중계진을 애먹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현경은 마치 자신의 눈앞에 프롬프터라도 보고 읽듯이 라이브 일문일답 내내 밝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우승의 기쁨을 털어놓았습니다. 보통 챔피언에게는 승리의 원동력을 묻는 게 밥상의 김치 같은 질문입니다. “최선을 다했다”, “마음을 비웠더니 결과가 좋았다”라는 피상적인 대답을 하는 예도 많습니다.
박현경은 달랐습니다. 그는 “올 시즌 첫 세 대회에서 톱 10에 들지 못해 매일 밤 퍼팅 스트로크를 500개씩 하고 잤다”라고 비화를 공개했습니다. 시즌 초반 신통치 않은 성적 탓에 야간 특별 훈련의 내용을 담은 디테일이 살아있었습니다. 다음날 박현경의 우승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는 대부분 ‘박현경 퍼팅 500개’라는 내용이 메인 제목으로 반영됐습니다.

<사진> E1 채리티 오픈에서 개인 통산 8번째 우승 트로피를 안은 박현경. KLPGA투어 제공
박현경은 우승상금 1억8000만 원 전액을 기부한다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원래 이번 대회 상금의 13%를 기부하기로 했지만, 오늘 우승을 하면서 100%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라며 “이 대회 취지를 생각하면 기부 문화가 떠오르고, 그것에 맞게 저도 동참하고 싶다”라고 밝혔습니다.
E1 채리티 오픈은 선수가 상금을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주최사 E1(회장 구자용)도 추가로 8000만 원을 기부합니다. 애초 통산 10승을 거두는 대회의 상금을 전액 기부하려 했다는 박현경은 이 대회의 ‘선한 영향력’을 고려했다며 통 큰 선행의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2019년 KLPGA투어에 데뷔한 박현경은 보기 없는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세웠습니다. 그 남다른 감회에 대해서 언급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선수 생활에서 나도 노 보기 우승을 해볼 수 있을까 늘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이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그린과 핀 위치가 까다로워 타수를 잃지 않는 똑똑한 플레이를 계속 이어가려 했어요.”
제한된 시간으로 중계진이 인터뷰를 마감하려고 하자 박현경은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족과 팬에게 감사 인사를 한 그는 메인 스폰서 메디힐 권오섭 회장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만약 박현경의 후원업체 관계자였다면 특별 보너스라도 더 주고 싶었을 것 같았습니다.
시상식을 마친 뒤 진행된 공식 인터뷰에서도 박현경은 상금 100% 기부에 대한 보충 답변을 했습니다. 이 대회가 채리티 대회고 기부 문화가 많이 생각난다. 혹시 우승한다면 이런 일에 동참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려움이 있는 곳에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고, 방송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에 아버지께 13% 기부에서 100%로 올린다고 선전포고했다. 경기 중간에 우승하면 100%로 올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실현할 수 있어서 좋다”고요.

<사진> 박현경은 뜨거운 팬덤을 몰고 다니는 한국 여자골프의 대표적인 인기스타. 석교상사 제공
김의주 홍보팀장은 박현경에 대해 “긍정적이고 미디어 프랜들리한 부분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뭔가를 숨기거나 지어내거나 하지 않는 게 좋게 보인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오랜 세월 박현경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구철 이사는 “똑똑하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큰 자산이다”라고 말하더군요.
박현경이 사용하는 브리지스톤 제품을 후원하는 석교상사 신용우 상무는 “박현경 프로와 대화를 해보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최고 장점이다. 사회성도 뛰어나다. 부모님의 교육도 중요했던 것 같다. (아버지) 박세수 프로님을 뵈면 주변에 대한 배려와 행동에서 배울 점이 많게 느껴진다”라고 전했습니다.
박현경은 공식 팬클럽 ‘큐티풀현경’의 회원 수는 50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열성적인 팬에 대한 박현경의 표현도 남다릅니다. 늘 팬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는다고 강조하는 그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는데 아이스 가방 메고, 큐티풀 모자를 쓰고 걸어가시는 팬분들 보면 제가 한 번 더 힘을 내야 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진> 늘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가족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박현경.
KLPGA투어는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인터뷰 요령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KLPGA 언론 인터뷰 가이드를 보면 ‘‘골프 선수는 TV, 신문, 인터넷, 잡지 등의 언론을 통해 골프팬이나 국민에게 보입니다. 따라서 기자들을 대할 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자신을 홍보할 수 있으며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브랜드가치도 높일 수 있습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인터뷰를 잘하기 위해선 사전에 어떤 답변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 개인적인 경조사 또는 연관 있는 사람과 연결해서 말하면 인터뷰의 내용이 풍부해진다고도 조언합니다. 판에 박힌 말투는 피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합니다. KLPGA투어가 제시한 모범 사례에는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라 꼭 우승으로 그동안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가 있더군요.
달변으로 유명한 최경주도 중요한 행사나 인터뷰를 앞두고는 미리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고 연습한다고 합니다.
E1 채리티 오픈 해설을 맡은 김재열 해설위원과 김윤성 캐스터는 “박현경 선수와의 인터뷰는 늘 즐겁다”라며 칭찬을 하더군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부분일 겁니다.
흔히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뛰어난 실력에 귀까지 즐겁게 하는 스포츠 스타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겁니다. 박현경이 바로 그렇지 않을까요.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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