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속도와 색깔로 점멸하는 숫자들…유한한 시간 속 인간 같아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5. 5. 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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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미야지마 타츠오 개인전
서울 한남동 갤러리 바톤서
LED 거울 연작 13점 펼쳐
일본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미야지마 타츠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한남동 갤러리 바톤 전시장 전경. 전시된 작품은 ‘C.T.C.S. K’in’(2024) 연작이다. 갤러리 바톤
‘9, 8, 7, 6, 5, 4, 3, 2, 1….’ 어둑어둑한 공간, 아무런 소리도 없이 거울 표면 위로 색색의 디지털 숫자가 점멸을 반복하며 카운팅 되고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디지털 소자로 구현된 이 숫자들은 각기 다른 속도와 색깔로 0을 제외한 1부터 9까지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 어떤 것은 느릿느릿하고, 어떤 것은 숨가쁘게 빠르다. 세대를 거듭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일본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미야지마 타츠오(68)는 LED 소자를 매개로 한 작품을 통해 “계속 변화한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영원히 계속된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개인전 ‘Folding Cosmos(폴딩 우주)’가 오는 6월 28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 바톤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존재와 생명, 의식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인 일본의 ‘세이메이(生命)’에 대해 탐구한 결과로서 거울을 활용한 연작 13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의 ‘폴딩 우주’는 끊임없이 접힌 우주를 의미한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의 약 85%가 종이접기처럼 접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접힘은 서로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음을 의미한다. 같은 모습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뜻하는 ‘평행 우주’나 상호 간 연결성을 가진 수없이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다중 우주’ 개념을 포괄한다.

미야지마는 이런 폴딩 우주가 가진 시간의 개념과 각 개인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미야지마는 작품에 0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0은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하나의 점과 같은 것”이라며 “빅뱅(우주의 탄생을 촉발한, 약 138억년 전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대폭발)의 순간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미야지마 타츠오 ‘Hundred Changes in Life-no.4’(2024). 갤러리 바톤
미야지마 타츠오 ‘Changing Time with Changing Self-Flower’(2014). 갤러리 바톤
그의 작품에는 물리학 외에도 다양한 수학적, 철학적 개념이 담겨 있다. 2024년 연작 ‘C.T.C.S. K’in’에서는 고대 마야 문명의 유적지를 답사한 뒤 해당 문화권의 달력에 사용된 최소 시간단위 ‘K’in’을 차용했다. 미야지마는 마야 문명이 사용했던 20진법의 핵심 단위라고 할 수 있는 5에 의미를 부여해 원형의 거울에 LED 소자들을 중앙의 오각형에서 점진적으로 뻗어나가도록 배열했다. 마야 문명은 인류 최초로 0을 포함한 20진법 숫자 체계를 정립했는데, 여기서 점 1개는 1을 의미하고 선 1개는 5를 의미했다.

미야지마가 특별히 LED 거울 작업을 통해 천착한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연결과 확장이다. “문득 지나가는 차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통해 세상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볼 때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작품을 이루는 거울은 관람객의 모습을 곳곳에서 비춘다. 흘러가는 숫자와 중첩된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 순간에도 같은 것이 없다.

같은 LED 거울 연작이라고 해도 표현 방식은 제각각이다. 일례로 ‘Hundred Changes in Life’(2024) 연작에서 미야지마는 서로 다른 색깔의 LED 숫자를 감싼 원통형 거울을 군집시키면서 안쪽 거울에 반사된 숫자 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 계속해서 반사에 반사가 되도록 연출했다. 또 ‘Changing Time with Changing Self-Flower’(2014)의 경우 일렬로 배치된 정사각형 거울 12개에 LED 숫자들이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형상으로 흩뿌려진 형태다.

미야지마는 일본 도쿄대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예술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 취리히 현대미술관(1993),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1996), 영국 런던의 헤이워드 갤러리(1997),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1997) 등 세계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1999년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본관에 작품을 전시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야지마 타츠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한남동 갤러리 바톤 전시장 전경. 갤러리 바톤
미야지마 타츠오. 갤러리 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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