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걱정에 한 표" "2시간 기다리더라도"… 사전투표 달려간 시민들
첫째 날 기준 역대 최고 투표율 기록
"내란 심판" "경제 살려야" 한 표 행사
"사전투표 못 믿어" 투표자 수 기록도

"10분이면 후딱 하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투표 열기가 대단하네요."
21대 대선 사전투표일 첫 날인 29일 오전 8시 40분. 서울 중구의 사무실 출근길에 인근 투표장을 찾은 조은진(27)씨는 "아직 50분째 대기 중"이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2·3 불법계엄'의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는 "유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러 왔다"면서도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는 대기줄을 애타게 쳐다봤다.
"직장 지각할라" 이탈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6·3 대선 사전투표 열기가 뜨겁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이날 투표 마감 시간(오후 6시) 기준 투표율은 19.58%로 사전투표가 적용된 전국단위 선거의 동시간대 투표율 중 최고치다.
서울 도심 한복판 중구 소공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장에는 오전 8시 20분에 유권자 100명 이상이 몰렸다. 대부분 20~40대 직장인들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며 이탈자가 나오기도 했다. 40대 신모씨는 "투표하려고 오전 6시에 일어났는데 더 일찍 나왔어야 했나 싶다"라며 오전 9시 출근시간을 10분 남기고 대열을 빠져나왔다. 신씨는 "그래도 '나라를 바로잡아야 된다' 마음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서 뿌듯하다"고 미소지었다. 이 투표장에는 점심시간엔 건물을 빙 둘러싸고 100m 넘는 줄이 생기기도 했다. 대기 시간은 오전에 약 50분이었다가 점심시간에 2시간으로 늘어났다. 김수민(32)씨는 "동료 두 명과 헐레벌떡 뛰어나왔다"며 "일단 줄을 서보고 안 되면 내일 새벽에 더 일찍 나오겠다"고 말했다.
주택가에 위치한 사전투표장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대문구 회기동에선 대학생 등 20대와 고령의 노인들이 오전 8시 전부터 몰렸고, 서초구 반포동 한 주민센터는 5층 투표장을 가는 사람들을 가득 채운 승강기가 쉼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계엄의 밤 생생"

다시는 계엄과 같은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투표장을 찾은 시민들도 많았다. 윤 전 대통령의 사저 아크로비스타에서 멀지 않은 반포1동주민센터에 온 주민 허모(43)씨는 "내란 세력 청산을 위해 투표소를 찾았다"며 "이런 게 해결돼야 올바르고 새로운 정부가 수립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엄 당일 밤 국회 앞을 지켰다는 최수진(53)씨는 "저희 집이 평소 헬기들이 다니는 길목에 있는데 헬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날 밤이 생각이 나) 너무 힘들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경제 안정'에 방점을 둔 유권자들도 보였다. 노모(64)씨는 "대기업을 죽이는 대통령이 아닌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을 바랐다. 동대문구 자영업자 이정열(55)씨도 "구태정치를 벗어나야 하고 경제가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식지 않는 '부정선거 음모론'

부정선거를 우려하는 유권자들도 있었다. 투표를 마친 한 70대 동대문구 주민은 "사전투표는 부정이 많아 믿지 못한다"면서도 "TV토론에서 아주 서로 비방만하고 헐뜯는 모습을 보고 본투표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오늘 왔다"라고 했다. 투표 활동을 감시하기도 했다. 김모(77)씨는 오전 6시부터 중구 한 투표소 앞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 수를 일일이 세며 흰 종이에 '바를 정(正)'자를 빼곡이 써 넣었다. 그는 "우리 교회 애국자랑 저랑 둘이 오늘 번갈아 가며 부릅뜨고 볼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변호인이 주도하는 시민단체 클린선거시민연대는 사전투표가 '부정선거 근간'이라며 서울 시내 사전투표소 40여 곳에 집회 신고를 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 부정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이번 대선부터 각 투표소별로 관내·관외 투표자 수가 몇 명인지 1시간 단위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사전투표소 경비 및 순찰 활동도 강화됐다. 전국 3,568개 사전투표소 중 20대 대선 기준 하루 사전투표자 수가 4,000명이 넘는 304개소(서울 57, 경기 79개소 등)에 정복경찰관이 2명씩 우선 배치됐다. 배치되지 않은 곳도 소란이 발생할 경우 투표장 관리관 판단에 따라 경찰에 도움을 구할 수 있다.
"다리 아파서 계단 못 올라가... "

투표소 '문턱' 앞에서 되돌아간 이들도 있었다. 동대문구 회기동주민센터는 2층에 투표장이 마련됐는데 건물에 승강기가 없다. 지팡이를 쥔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주민 김윤자(82)씨는 "둘 다 다리가 아파서 못 올라갔다"며 건물 바깥 화단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내일 다리가 안 아프면 다시 와야지"라고 푸념했다. 몇 시간 뒤 같은 투표장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백발 노인도 1층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선관위 규정은 '유권자 요청시 본·사전 투표소 1층에 임시기표소를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2017년 대선 때도 같은 문제가 지적됐지만 여전히 바뀐 건 없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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