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입는 옷 팔아 푼돈이라도” 헌옷 방문 수거 문의 폭증...현장 동행해보니

김도균 기자 2025. 5. 29. 1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고(高) 현상’ 장기화에 허리 띠 졸라 매는 시민 늘어
헌옷수거함 사라지는 것도 원인
지난 15일 오전 헌옷 방문수거 업체를 운영하는 김영선씨가 헌옷을 봉지에 나눠 담고 옷값을 책정하고 있다./김도균 기자

“헌옷 수거하러 왔습니다. 지금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지난 15일 낮 12시 30분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 6년 차 헌옷 수거업체 업주 김영선(43)씨가 이모(60)씨의 집을 찾았다. 현관에는 30여 개의 신발이 쌓여 있었고, 현관 밖 복도에청바지·가디건·맨투맨 등이 담긴 성인 남성 허리 높이의 대형 포대 2개가 놓였다. 김씨가 운동화를 수거함에 옮기며 “이건 아직 깔끔하고 예쁜데 버리시려고요?” 묻자 이씨는 “그 신발 잘 안 신게 되더라고요. 팔고 받은 돈으로 사위랑 커피 한 잔 사먹는 게 나을 듯해요”라고 했다. 이날 이씨가 내놓은 옷은 총 4만1000원어치였다. 이씨는 “헌옷 판매처럼 쏠쏠한 용돈벌이도 따로 없다”며 웃었다.

헌옷 판매가 ‘짠테크’ 수단으로 인기를 끌자 헌옷 방문 수거 업체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짠테크는 ‘짠돌이 재테크’의 줄인 말로, 낭비를 줄이고 한 푼이라도 더 모으는 재테크를 뜻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이 장기화하자 허리띠를 졸라 매고 “안 입는 옷 팔아 푼돈이라도 벌자는 시민들이 늘어난 것이다. 헌옷 방문 수거 업자들은 1kg에 700원 정도를 지불하고 헌옷을 매입한 뒤, 이를 중고 의류 업자들에게 되파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업계 관계자는 “헌옷 수거량이 2년 새 3배 가량 늘었다”며 “하루에 40곳까지도 찾아가 수거할 때가 많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서초구 반포동 등 부촌(富村)에서 들어오는 문의도 전체의 20%는 된다고 한다.

이날 김씨가 인천·고양 등 수도권 일대 아파트 3곳을 돌자 단 3시간 만에 1톤 트럭이 헌옷을 담은 100L짜리 봉투로 가득 찼다. 한 달 평균 70톤을 수거한다고 한다. 김씨가 이동하거나 헌옷 수거 작업을 하는 중간에도 “우리 집에 와서 헌옷 좀 수거해 달라”는 전화가 수차례 왔다. 김씨는 “과거엔 헌옷을 돈을 내고 버렸다면, 이제는 돈을 받고 버리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했다.

김영선씨가 트럭에 헌옷이 담긴 비닐봉지를 담고 있다./김도균 기자

이렇게 집집마다 돌며 수거 업체가 매입한 헌옷은 1차적으로는 국내 빈티지 의류 도·소매업자들에게 다시 판매된다. 국내에서 팔리지 않은 남은 옷들은 해외에 떨이로 넘겨진다.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등이 주요 수출 국가라고 한다. ‘중고 의류’로 시장에 유통되는 만큼, 옷에 구멍이 나거나 헤져 벌어진 부분이 없어야 한다. 신발은 밑창이 잘 붙어 있어야 하고, 가방은 겉면이 훼손되지 않고 지퍼가 잘 작동해 곧바로 착용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레트로 열풍이 불자 헌옷 수거업체를 찾는 빈티지 의류 판매업자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수거 업체가 헌옷을 매입하는 가격도 크게 뛰었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1kg당 200~300원 선이던 헌옷 값은 올해 700~800원으로 약 3배 상승했다. 방문 수거 업체들이 늘어나며 “가격을 더 쳐주겠다”는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방역 문제로 끊겼던 해외 헌옷 수출이 다시 활발해지며 헌옷에 대한 해외 수요가 증가했고, 비싼 가격에 재판매할 수 있으니 헌사 올 사올 때도 더 높은 값을 쳐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나 길가에 있던 헌옷 수거함이 줄어든 것도 방문 수거 인기의 이유다. 서울시에 있는 헌옷 수거함은 2021년 1만4827개에서 2025년(5월 기준) 1만1926개로 4년 새 약 20% 감소했다. 쓰레기 불법 투기와 그로 인한 악취 탓에 ‘애물단지’ 취급을헌옷 수거함을 없애는 아파트가 많아진 탓이다. 경기 수원에 사는 김나경(49)씨는 “지난달 이사하며 헌옷을 버리려는데 단지 안에 수거함이 없어서 방문 수거 업체를 이용했다”며 “무거운 옷더미를 가지고 낑낑대며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 돈까지 벌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