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수비 넘나드는 패션계 전천후 포지션 'MD' [강홍민의 굿잡]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안 되는 것 없는 세상으로 변하면서 오프라인에서 가능했던 것들이 온라인·모바일 시장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기존 오프라인 시장의 점유율이 온라인으로 빠르게 흡수되면서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 속도는 몇 곱절이나 빨랐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새로운 직군이 생겨나고, 기존 직무의 몸값도 빠르게 변해갔다.
그 중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직업이 바로 MD(MerchanDiser)다.
‘상품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불리는 MD의 역할은 회사에 따라 상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선봉에 서 있는 그들은 수비와 공격을 넘나드는 전천후 미드필더(Midfielder)와 비슷해 보인다. 우스갯소리로 그들 사이에선 MD가 ‘뭐든지 다한다’의 줄임말로 통할 정도니까.
특히 패션MD는 제품 소싱부터 판매, 마케팅 등에도 관여하면서 소위 일당백으로 불리는 직군 중 하나다. 디자이너 브랜드를 전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W컨셉’에서는 잘 팔리는 옷을 선별하는 것은 물론, 이제 막 시작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MD들의 몫이다.
여기에다 한 두 시즌을 앞선 트렌드를 만드는 것에도 일조한다. 최근 2030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인 ‘세레모니 웨어’도 W컨셉 MD들의 발품으로 나온 ‘핫 아이템’ 중 하나다.
마치 우아한 백조처럼 화려함 이면에는 누구보다 발품을 팔아야 하는 직업 'MD', 늘 ‘트렌드’와 ‘소통’, ‘숫자’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오민지 W컨셉 컨템포러리 팀장을 만나 MD의 세계를 들어봤다.

패션MD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한 10년 정도 됐어요. 돌이켜보니 그동안 패션 제조사부터 온라인 플랫폼까지 패션과 연관된 곳을 옮기며 경력을 쌓았네요. 지금은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W컨셉’의 컨템포러리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업계에서 10년 차 팀장이면 빠른 건가요.
“팀장이 될 경력이긴 한데, 분야 특성상 좀 일찍 된 것도 같아요.(웃음)”
온라인 패션 플랫폼 MD는 어떤 일을 하나요.
“W컨셉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판로를 개척한다는 목표로 2008년에 설립됐어요. 그 안에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육성하는 일도 맡고고 있어요.”
W컨셉에 입점한 디자이너 브랜드 수는 몇 개나 되나요.
“작년 기준으로 6,200여개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입점 돼 있고, 매년 늘어나는 추세예요. 그렇다고 디자이너 브랜드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잡화·액세서리를 뺀 패션 카테고리 비중이 80~90% 정돈데, 그 중 절반 정도가 컨템포러리 디자이너 브랜드예요.”
전체 상품군에서 디자이너 브랜드가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겠네요. 매출도요.
“전체 매출 비중에서 절반 정도 차지하고 있어요.”
디자이너 브랜드의 입점 기준은요.
“기본적으로 자체 디자인 한 상품을 컬렉션 단위로 판매하는 브랜드로 정의하고 있어요. 그리고 고객 응대 및 소통이 가능한 CS전담 부서가 있는지,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파악해 선별하죠. 사실 기준이 더 있지만 대외비라 다 공개하진 못합니다.(웃음)”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나요.
“예를 들어, 각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보면 도매인지 소매인지, 직접 디자인을 해서 생산을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희가 요구하는 항목이 직접 디자인을 하는 브랜드만이 기입할 수 있거든요. 전문가들은 한 눈에 보면 바로 파악할 수 있죠.”

입점 기준이 까다로울 것 같은 느낌이네요.
“그럴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핵심 고객의 특성과도 연결되거든요. W컨셉을 이용하는 고객층이 패션에 대한 본인의 취향이 확고하고, 품질과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 여성 소비자가 메인인데, 그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선 브랜드를 선별하는 과정을 꽤나 까다롭게 운영해야 합니다.”
"신규 입점 신청 브랜드 분류 비롯해 브랜드에 입점 제안, 입점한 브랜드 성장시키는 것도 MD 몫"
입점의 형태는 브랜드에서 제안을 하나요, 아님 플랫폼에서 시장조사를 통해 선별을 하나요.
“둘 다예요. 신규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서 저희 쪽으로 입점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고, 기존 브랜드 중에서 아직 저희 쪽에 입점이 안 돼 있는 브랜드는 저희 쪽에서 제안하기도 해요.”
입점 신청하는 브랜드 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시즌, 비시즌별로 다른데, 월 평균 30~40군데 정도 신청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그 중에서 저희 MD들이 서류 검토를 해서 선별하는데, 사실 매월 수십 개의 브랜드가 신청해도 한 곳도 입점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절반 이상 입점 되는 경우도 있어 매 상황마다 달라요.”
반대로, 어느 정도 성장한 브랜드에 입점 권유를 하는 건 입장이 또 달라지겠군요.
“그렇죠. 어느 정도 성장했는데, 저희 쪽에 입점이 안 돼 있다는 건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거든요. 플랫폼 입점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철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경우에도 끊임없이 노크를 해요. 그럼 언젠간 되거든요. 계속 두드려서 입점을 한 브랜드도 꽤 되고요.(웃음)”
입점 심사 때 반대로 입점 제안 때는 MD 역할이 확연히 다를 것 같아요.
“대부분의 MD들은 양쪽 다 잘 하는 역할이지만 그 중에서 신규 브랜드를 선정하고 육성을 잘 하는 스타일이 있고, 기존 브랜드를 잘 관리하는 MD들이 있어요. MD마다 강점이 다 다르거든요. 그 강점을 잘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제 역할이기도 해요.”
MD의 강점을 파악해 적재적소 포지션에 배치하는 팀장의 역할이 마치 축구팀 감독과 비슷하네요.
“그렇죠. 근데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과 각자 희망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예요.(웃음) 재능은 이쪽이지만 다른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팀원들도 있거든요. 그럴 땐 잘 설득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예요.(웃음)”
컨템포러리 팀에선 총 몇 명의 MD가 근무 중인가요.
“현재 저 포함 15명의 MD가 근무하고 있고, 각 MD당 50~100여개의 브랜드를 관리 중이에요.”
신규 디자이너 브랜드 육성도 어떤 식으로 하나요.
“사실 신규 브랜드 중에서는 영세한 곳들이 굉장히 많아요. 디자이너 혼자서 운영하는 곳도 꽤 있죠. 그런 곳은 옷을 만드는 일 외 다른 일은 못해요. 그래서 MD들이 물량 체크부터 목표 매출, 디자인 특징 등 파악해서 지원방안을 찾아 도와주죠. 썸네일 디자인 같은 작은 부분부터 라이브방송, 인플루언서 협업 화보, 프리오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브랜드 성장을 지원하고 있어요.”
신규 브랜드 입장에선 굉장히 큰 도움이겠네요. W컨셉 입점 이후 잘 된 브랜드들도 꽤 있겠어요.
“그럼요. 박소영 디자이너가 전개하는 ‘닐바이피(NILBY P)’라는 브랜드가 2017년에 입점해 작년까지 매출 10배 신장했고, 여성 컨템포러리 브랜드인 ‘시야쥬(SIYAZU)’도 2020년에 입점한 이후 매출이 약 20배 신장했어요. 그 외에도 콘셉트나 옷은 좋은데 판매 경로를 찾지 못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입점 한 뒤로 유명해진 브랜드들이 꽤 많습니다.”

MD 입장에선 관리하는 브랜드의 매출이 잘 나오면 좋지만 반대로, 매출이나 고객 반응이 좋지 않으면 부담이 될 수 있겠군요.
“그렇지 않아요. 성과가 난 브랜드의 MD에겐 당연히 당근이 주어지지만 성과가 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을 묻진 않아요. 만약 MD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면 늘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해야 하는 과정이 굉장히 소극적으로 바뀔 수 있거든요. 그건 회사가 바라는 바가 아니에요. 부진한 성적의 책임은 팀이, 성과는 개인의 영광으로 돌리죠.(웃음)”
MD 역할이 내·외부 교류가 많을 것 같아요.
“관리 영역에 있는 디자이너들과의 소통은 기본이고, 내부에선 영업팀이나 콘텐츠 제작팀, 마케팅·홍보팀과도 정말 긴밀하게 협업을 해야 합니다. 특히 저희는 타 플랫폼에 비해 콘텐츠에 강점이 있기로 유명한데, 브랜드 콘텐츠 방향을 잡을 때도 굉장히 호흡이 중요해요.”
그만큼 소통 능력도 MD의 덕목 중 하나겠군요.
“디자이너들마다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소통방법이 필요해요. 내부에서도 각자 다른 용어를 쓰는 담당자들과 소통해야 하니 말씀하신대로 MD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필수로 갖춰져야 해요.”
"패션 감각은 필수 늘 변하는 패션 트렌드 읽을 줄 알아야···
스타일 뿐 아니라 매출·판매분석·구매전환율 등 숫자와도 친숙해야"
커뮤니케이션 능력 외 패션 플랫폼 MD가 꼭 갖춰야할 부분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요.
“패션에 대한 감각은 필수죠. 스타일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트렌드를 읽을 줄 알아야 해요. 그래서 패션 전공이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패션을 전공했다면 좀 더 유리한 건 사실이죠. 또 저희끼리는 ‘차가운 이성’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매출이나 판매 분석, PV, 구매전환율과 같은 숫자를 기준으로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도출해 낼 수 있어야 해요. 그걸 기반으로 전략도 함께 세워야 하고요.”
얘길 들어보니, MD는 도제식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맞아요. 그래서 신입 MD들에겐 큰 브랜드를 맡기기보다 작은 브랜드들을 통해 상황마다 생길 수 있는 변수들을 많이 경험하게 만들어요. 가끔 신입들에게 팀에서 언급되지 않은 브랜드 5개를 찾아오라는 과제를 내주기도 해요. MD들이 모르는 브랜드를 찾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려운 과제거든요. 찾아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찾는 과정이 공부가 되고, 경험이 되는 거죠.”
패션 MD들은 ‘옷을 잘 입을 것 같다’, ‘여성이 많을 것 같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론 어떤가요.
“저희 회사만 보면 옷을 못 입는 MD는 없는 것 같아요. 화려하게 입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스타일이 별로인 분들은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참고로, 저희 팀엔 남자 MD 한 명 외엔 모두 여성이에요.”
직업병이 있다면.
“아무래도 길거리에서 옷을 유심히 보는 면이 있어요. 소재는 뭘 썼는지, 원가는 얼마나 되는지 혼자서 막 생각하면서 유심히 보고 다녀요.(웃음) 지나가다가 저희가 판매한 옷이 보이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요. 담당 MD나 디자이너한테 사진 찍어서 인증하곤 해요.(웃음)”
MD들의 옷값도 만만치 않겠군요.
“음···매월 수입의 20%는 옷값으로 나가는 것 같아요. 전 W컨셉에서만 옷을 사는데, 영업적 측면도 있지만 대략 원가가 얼마인지 아니까 다른 곳에서는 옷을 안 사게 되더라고요.(웃음)”
가까운 미래, AI(인공지능)가 MD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까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요.
“사실 요즘 저희들 사이에선 가장 핫한 대화 주제예요. 실제 현업에서도 자동화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걸 체감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MD의 영역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이 예측한 판단은 리스크는 줄일 수 있지만 트렌드를 만들긴 어렵다고 봐요. 그 트렌드는 사람의 기획과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아직까진 MD의 영역을 넘보진 못할 것 같아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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