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연필’로 세계적 명성... 흥행 실패 감독 미야자키의 특별한 삶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삶 돌아봐
연재 만화 ‘바람의 나우시카’로 재기 발판
애니로 생태와 반전 메시지 전달하려 노력

첫 연출 장편 애니메이션영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은 흥행에 실패한다. 미국 TV애니메이션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절망감에 어려서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내용으로 만화를 그린다. 알고 지내던 만화잡지 편집장 스즈키 도시오에게 게재를 제안한다. 1982년 시작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연재는 1994년까지 이어진다. 동명 장편애니메이션(1984)으로 만들어져 일본 관객 900만 명을 모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수익금으로 1985년 애니메이션영화 제작 회사를 차린다. 스튜디오 지브리다. 실패를 곱씹어야 했던 인물이 일군 놀라운 반전이다.
지브리의 유전자가 된 미야자키 하야오

스튜디오 지브리는 실패를 모르는 회사였다. 창립작 ‘천공의 성 라퓨타’(1986)와 ‘이웃집 토토로’(1988) 등 히트작이 줄을 이었다. 공동 창립자인 다카하타 이사오(1935~2018) 감독과 스즈키 편집장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브리는 미야자키 감독이고, 미야자키 감독이 지브리였다. 미야자키 감독을 알면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이 보인다.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지브리의 유전자가 된 미야자키 감독의 삶을 돌아본다.
미야자키 감독 애니메이션의 키워드는 생태와 반전(反戰)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떻게 생태와 반전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네 살 때 겪은 끔찍한 일이 그에게 전쟁에 대한 공포를 심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 폭격기의 공습에 대한 기억이었다. 아버지가 일제 전투기 제로센의 부품 공장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느낀 죄책감이 영향을 주기도 했다. 전후 경제성장 과정에서 일본이 겪은 환경오염은 생태에 대한 경각심을 형성시켰다. 미야자키 감독 애니메이션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거대한 나무는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의 상징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눈에 띄기도 한다. 그는 고교 3학년 시절 일본 최초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백사전’(1958)을 보고 인생 항로를 정했다. 만화를 좋아했던 그는 움직임이 가미된 만화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이라크전 이유로 아카데미 시상식 불참

‘붉은 돼지’(1992)는 당초 미야자키 감독이 흥행과는 무관하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만들고 싶던 단편이었다. 유고슬라비아전쟁(1991~1999)의 발발을 보고 미야자키 감독은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드리아해가 피로 물들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미야자키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을 때 시상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그날(2003년 3월23일)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야자키 감독과 지브리 팬이라면 특별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미야자키 감독 입문서 정도로 느껴질 테니까. 하지만 영화는 특별함을 품고 있기도 하다. 미야자키 감독의 소회, 만화잡지 편집장에서 프로듀서로 변모한 스즈키의 회고, 아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아버지에 대한 평가 등이 담겨 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일하는 공간, ‘모노노케 히메’(1997) 제작 당시 모습 등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종이와 연필만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라고 말한다. 사람이 수만 장의 그림을 그린 후 이를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야 완성할 수 있었던 ‘셀애니메이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 인공지능(AI)으로 보다 쉽게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2020년대, 일과 신념과 이념을 일치시키려 해온 애니메이션 장인의 삶은 울림이 크다. 프랑스 감독 레오 파비에 연출. 전체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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