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계엄 이후 도드라진 사법의 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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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걸 수사하는데, 정치적이라고 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2018년 어느 날 기자와의 차담 중에 협탁 위에 놓인 보수 성향 일간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이른바 ‘사법농단’ 수사가 한창이었는데, 해당 매체는 이를 정치적 수사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불만은 이해할 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권의 사법 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했고,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은 법원 자체 조사 결과를 받아들고선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공을 검찰에 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법원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대법관들이 수사선상에 오르고, 법원행정처 등을 포함해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전국 법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으며, 수십 명의 법관들이 줄줄이 검찰청으로 불려와 조사를 받았다. 사법부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판사들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한 건 이 무렵인 것 같다. 상대 진영에 유리한 판단을 내린 판사들에 대한 인신 공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12·3 불법계엄 사태로 극적으로 폭발했다. 윤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은 그의 지지자들에게 폭력으로 점거됐고, 윤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법관은 내란 세력으로 몰렸다. 뒤에선 법원을 욕해도 앞에선 존중해왔던 관행은 사라진 지 오래다.
불법계엄에 따른 탄핵으로 윤 전 대통령이 물러나 대선 시계가 2년 앞당겨지면서 불은 대법원으로 옮겨 붙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파기환송한 탓이다. 선거법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강조해왔던 조희대 대법원장은 후보 등록 전 선고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에 대한 청문회를 포함해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추진 등 사법부 개혁의 자충수를 둔 셈이 됐다. 향후 사법부 권위의 추락도 불가피하다.
조 대법원장은 이 후보의 상고심 선고 여파로 사법부의 위기가 닥친 데 대해 조기 대선을 자초한 윤 전 대통령을 원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치 개입' 논란을 낳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정치권에서 해결했어야 할 문제들을 서초동에 던져 놓고, 그 결과에 대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대선 토론회 종료 직후 상대 진영 후보들에 대한 고소·고발장은 또 쌓여만 간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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