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00년 전 스무트-홀리 시대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

(이어서)1920년대 미국 경제는 제1차 세계대전 특수와 공장제 생산 덕에 빠르게 성장했다. 농업 부문에서도 모터와 엔진이 가축을 대체하고 사료용 농지들이 논밭으로 전환돼 잉여 농산물이 쌓여갔다. 1차 대전 폐허의 유럽도 심기일전, 농산물을 미국으로 역수출하기 시작했다.
그 사태에 대처하고자 공화당 상원 재정위원장 리드 스무트(Reed Smoot, 유타주)와 하원 세입위원장 윌리스 홀리(Willis Hawley, 오리건주)가 1929년 5월 ‘스무트-홀리 법안’을 상정했다. 수입 농산물에 고율 관세를 매겨 농민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갓 임기를 시작한 허버트 후버(공화)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도 그거였다.
과잉 생산으로 고심하던 제조업계도 고율 관세 대상 품목에 공산품을 끼워달라는 로비를 전개했다. 2만여 개 수입 품목에 대한 평균 55%(최대 400%)의 초고율 관세법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1929년 5월 28일 하원을 통과했다.
약 5개월 뒤 주가 폭락과 함께 대공황이 시작됐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이자율을 낮추고 국채를 대거 매입해 금융시장에 돈을 퍼부으면서 30년 봄 주식시장은 얼마간 회복됐다. 후버 대통령도 대규모 토목공사로 실업률 완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곤 1930년 6월, 경제학자 1,028명의 반대 청원을 무릅쓰고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최종 서명했다. 법은 대공황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았다. 관세-보복관세로 29년 52억 달러였던 미국 수출규모는 32년 11억 달러로 격감했고, 세계 무역 규모도 같은 기간 3분의 1로 줄었다. 주식시장은 더 깊이 폭락했고 은행, 특히 농촌의 작고 영세한 은행들부터 연쇄 도산했다.
의회는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으로 신임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스무트-홀리 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했다. 현재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는 1962년의 무역확장법과 77년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 등 6개 법률에 근거해 폭넓은 관세 행정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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