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은 허락한 그, 사랑

1958년 영국 런던, 한 남성이 진료실에 들어선다. "여기까지 올 용기를 낸 걸 축하한다"고 말한 의사는 그에게 불쾌하고도 무례한 질문 폭격을 던지고는 "아주 극단적인 치료가 될 것"이라는 설명을 남긴 채 떠난다.
홀로 남겨져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어 가는 남성의 이름은 '필립'. 그는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부동산중개업자로 일하며 아내 '실비아'와 그런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 왔다. 동화작가 '올리버'를 만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겉보기에는 그랬다.
각자 실비아의 남편과 동료로 만나게 된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에게 첫눈에 끌렸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지만 필립이 유부남인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죄악과도 같았다. 필립도 올리버도 같은 남성이었기 때문에.
연극 '프라이드'는 성소수자의 사랑 이야기다. 2008년 영국에서 초연돼 비평가협회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국내에서는 2014년 첫선을 보인 후 이번 공연이 다섯 번째 시즌이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등장시키지만 이는 포장지일 뿐, 내면에는 사회의 편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자 했던, 또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수많은 소수자들의 역사를 담고 있다.
사회적 체면과 규율을 중시했던 그 시절의 필립은 올리버를 향한 마음을 부정한다. 사랑을 느꼈던 순간들을 '단순한 실수', '호기심'이라 치부하고, 자신에게 사랑한다며 매달리는 올리버에게 침묵만이 그를 지켜줄 수 있다며 성적 정체성을 세상에 숨기라고 조언한다.
그 후 필립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기로 결정한다. 이 장면을 통해 당시 동성애를 향한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자 고쳐야 하는 질병.
애써 올리버를 밀어내고 고된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 필립의 모습은 동성애를 떠나 그저 사랑의 아픔을 견뎌 내려 부단히 노력하는 한 사람일 뿐,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50년의 시간이 흐른 2008년에도 같은 얼굴, 같은 이름을 한 필립과 올리버, 실비아가 존재한다. 과거와는 상관없는 다른 인물이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사랑과 우정으로 엮여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반세기가 지난 이곳에서 필립과 올리버는 공공연한 연인이다. 다만, 이번에는 세상의 억압이 아닌 둘의 성향 차이로 헤어짐을 논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고통이었다면 현재의 두 사람은 사랑하며 서로에게 맞춰 가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2008년에서도 둘의 만남을 주선한 실비아는 필립과 올리버의 화해를 위해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함께 갈 것을 제안한다. 축제가 열릴 만큼 세상이 달라졌지만 축제장 한편에서는 '게이스럽다', '게이 같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여러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는 소수자들의 외침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다.
극이 1958년과 2008년, 50년의 시차를 오가며 보여 준 변화된 세상은 앞으로 갈 길이 더 남아 있다. 그들이 스스로의 '프라이드(Pride)'를 갖고 당당히 나서도록.
연극 '프라이드'는 다음 달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 아트원에서 만날 수 있다.
정경아 기자 jka@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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