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칼럼] 6월, 국가가 고개 숙이는 시간- 강호증(경남대 군사학과 교수)

국가의 안녕과 주권 수호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어떻게 예우할 것인가는 어느 시대, 어떤 정치 체제에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보훈’은 국가나 공동체를 위해 공을 세운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에 대해 보답하는 것으로, 단지 한 사람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였다.
이러한 보훈의 정신은 고대부터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계승되고 있다. 고대 아테네는 민주정의 근간이 ‘시민 군인’에 있다는 인식 아래, 전사자를 단지 가족의 아픔으로 끝내지 않고 도시 전체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렀다. 페리클레스의 유명한 장례식 추도사는 그런 철학을 상징하며, 유가족에게는 연금이 지급되었고, 전쟁고아는 국가가 교육을 책임졌다.
고대 로마 역시 군 복무를 국가 공동체의 가장 숭고한 의무로 인식했다. 25년 이상 복무한 병사에게는 토지를 하사하고,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전투 중 불구가 된 병사에겐 보상금과 귀향 지원을 제공했다. 로마 제국은 전역 병사들을 지방에 정착시키며 국경 방어와 식민화에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군 복무의 보상과 재정착’이라는 보훈의 구조가 형성됐다.
이 전통은 근대에 이르러 프랑스 앵발리드(1676)의 설립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최대 6000명의 노병을 수용할 수 있는 종합 시설로서, 노병들은 직물 제작, 수선, 조각 등 생산활동에 참여하며 자립을 추구했고, 사회 속에서 여전히 자신이 유용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세기 이후, 징병제와 총력전 체제가 확산되면서 보훈 제도는 더욱 확장되었다. 영국은 첼시병원(Royal Hospital Chelsea)을 중심으로 은퇴 군인의 숙소와 연금을 지원했고,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대에 세계 최초로 사회보장과 연계된 보훈연금을 도입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은 보훈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재향군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VA)는 병원 170여 곳, 진료소 1000여 곳을 운영하며 전역자에게 평생 의료를 제공하고, 정신건강 프로그램, 고용연계 복귀훈련, 주택대출, 교육(GI Bill) 지원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자가 2013년 교수연수 중 미국에서 활약하던 추신수 선수의 야구경기를 관람했다. 이닝 브레이크에 참전용사들이 클로즈업되어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는 장면이 대형 화면에 비치고, 전 관중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보훈이 미국 사회의 생활 문화에 얼마나 깊이 녹아 있는지를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보훈에 대한 인식이 존재했다. 전공자에 대한 작위와 토지 하사, 유가족에 대한 예우 등의 전통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공신도감 설치를 통해 상훈 제도를 체계화하고, 충렬비나 사당에 제향을 올리는 등 유교적 예(禮)와 연결된 보훈 문화가 정착되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 보훈 의식은 6·25전쟁 이후 급속히 발전하여 1961년 국가보훈처가 창설되고, 이후 보훈병원, 국립묘지, 상이군경회 등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그리고 의병의 날(6.1), 현충일(6.6), 6·10만세운동, 6·25전쟁 발발일 등 대한민국 주권 수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이 6월에 집중되어 있어, 1982년부터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했다.
보훈은 과거를 예우하는 일이자 현재를 책임지는 일이며, 미래 희망을 설계하는 것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은 단지 형식적 기념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만든 이름 없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고민하며 국가가 머리를 숙이는 시간이다.
곧 치러질 대선에서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보훈의 가치를 정치와 정책의 중심에 두고, 말이 아니라 제도로, 표식이 아니라 실질적 삶의 희망으로 설계해야 한다. 보훈이 국가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속성의 토대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강호증(경남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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