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정치화’라는 지적 게으름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이 글의 목적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넘실거리는 ‘사법의 정치화’라는 용어가 제대로 된 학술적·사회적 합의가 없는, 한마디로 ‘족보 없는’ 용어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법의 정치화’는 최근 법원이나 판결을 이현령비현령식으로 비판하는 맥락에서 남용되고 있다. 사법개혁, 법원개혁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용어와 개념으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현상부터 확인해보자. 전국 일간지 10개 매체를 기준으로 1990년부터 현재까지 ‘사법의 정치화’가 언급된 기사 수를 확인해보면 2010년 이전까지는 한자릿수에 불과했다. 2020년대가 되어서야 연간 50건이 넘었고, 지난해는 90여건, 올해는 1월부터 5월까지만 해도 150여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종석 헌법재판소 소장은 지난해 퇴임사에서 ‘사법의 정치화가 민주주의 질서를 해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용어 사용은 급증하지만, 내용은 중구난방이다. 한국에서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사법화’(국가의 주요한 정책이 사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사법부로 권력이 이전되는 경향)라는 전세계 많은 논자들이 오랜 시간 연구하고 발전시킨 개념에 기대어 그것의 후과(부작용) 정도로 쓰이곤 있지만, 학계의 공통된 정의는 없다. 외국의 용례도 드문데, 확인되는 사례는 미국 주 법관 선거 과정에서 기업들의 자금 지원에 대한 우려나 최근 법관 직선제를 도입한 멕시코의 제도 변화에 대한 분석 과정에서 등장하는 정도다. 신흥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원이 ‘정치화’ 되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는 민주화 이전 대한민국 사법부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놓여 있을 때와 비슷한 상황에 대한 평가다. 한국의 현재 상황과 부합하는 내용은 전혀 아니다.
해당 용어가 최근 한국에서 사용된 가장 공식적인 문서라 할 수 있는 이종석 헌재소장 퇴임사를 살펴보아도,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는 것 정도다. 이 내용에 현재 한국 상황을 적극 대입해 다시 써보면 이렇다. ‘양극화한 정치·사회적 구조 속 첨예한 대립을 바탕에 둔 사안(정책)을 법원이 계속 판단하다 보면, 그 판결을 내린 법원에 대한 비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사법의 정치화’는 별도의 현상이나 개념으로 명명될 이유는 크지 않다. 사법의 정치화에서 사법부는 문제의 결과인 것이고, 정치가 사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내용도 있다. 법률신문에 2023년 게재된 칼럼에서는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 특히 선동 정치가들이 여론을 등에 업고 입법을 통하여 법원을 권력에 종속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을 ‘사법의 정치화’라고 정의했다. 이건 족보가 있는 분석이긴 하다. ‘정치의 사법화’가 만들어지는 원인 중 하나로 ‘헤게모니 보존전략’을 지적하는 연구가 다수 있다. 입법이나 행정 권력을 잃을 수도 있는 정치세력이 사법부, 특히 최고 법관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노골적으로 대변해줄 수 있는 인사를 꽂은 후, 사법을 통해 영향력을 영구화하는 전략이 ‘정치의 사법화’ 배경이라는 것이다. 사법이 ‘인권의 최후 보루’가 아니라 ‘국가운영의 최후 보루’가 된다면 최고 법관의 자리에 각 정파의 대리인들을 앉히기 위한 욕망이 노골화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의 40년 지기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사례(임명동의안 부결),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 전 대통령과 극도로 친밀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위헌적 행위 모두 이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 정의에 따를 때도 문제 해결의 시작은 정치다.
한국경제와 머니투데이에 올해 실린 칼럼은 또 다른 내용으로 ‘사법의 정치화’를 정의하는데,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일반적 용례로 보인다. “판사들이 사법적 판단에 자신의 정치 성향을 투영하는 경향이 노골화하는 양상”, “대통령 체포 및 구속영장 발부 과정에서 담당 판사의 이념적 성향”. 전자의 경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비판에서, 후자의 경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 절차와 탄핵심판 과정에서 대거 등장했다. 진영과 법리를 떠나 모두 ‘사법의 정치화’라는 비판으로 대동단결이다.
대법원이 이례적인 속도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소집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지난 26일 임시회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대선 뒤 회의를 다시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사법의 정치화’ 논란을 피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아시아투데이는 역시 사설에서 법관회의가 ‘민주당의 사법부 장악 법안에 침묵했다’며 ‘사법의 정치화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라고 비판했다. 같은 사건에 대한 옹호도 비판도 모두 ‘사법의 정치화’다. 도대체 ‘사법의 정치화’란 무엇인가?
‘사법의 정치화’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하자. 내용의 합의도 분석적 이득도 없다. 판사가 판결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고 비판해야 함은 마땅하지만, 이 구체적 작업을 그저 ‘정치화’라는 단어로 뭉개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이 손가락질이 아니라 개혁과 대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독립’이라는 단어가 딱 두번 나오는데, 그중 한번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이다. 이 ‘독립’을 바탕에 두어 분석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찾자.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특히 그 절차는 삼권분립과 법관의 독립을 의심케 했다. 그렇다면 그 대안 역시 독립을 회복할 조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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