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과학하는 마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내가 학위를 마치고 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97년이었다. 당시 나는 평생 연구에만 몰두하는 과학자로서의 미래를 꿈꿨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보직과 책임을 맡게 됐고, 다시 세월이 흘러 이제는 총장으로 일하게 됐다. 인생이라는 배는 내가 계획하고 원하는 방향으로만 항해하지 않는다는 스승과 선배들의 말을 실감한다.
물론 대학교의 총장은 매우 영광스럽고 보람된 자리다. 하지만 내가 가장 행복하게 몰입한 순간은 연구할 때였다. 만약 누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과학자 출신 대학 총장입니다"고 말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력도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200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수여하는 '이달의 과학자상'을 받은 일이다. 과학자가 보상이나 명예를 바라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로부터 성과를 인정받은 영광된 수상이었다.
이제는 교육행정이 나의 주된 역할이다. 대학이 기업은 아니지만 총장은 학교가 '교육과 연구'라는 핵심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계획을 짜고 지원하는 최고경영자다. 또 학교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 뛰어난 성과를 도출하는, 흡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도 비슷하다. 실제로 대학에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응용과학을 연구하는 분들과 인문학이나 다른 순수 학문을 연구하는 많은 분이 있다. 어디까지를 과학으로 정의할지 논란이 있지만,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대학의 모든 연구자를 과학을 하는 분들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여기저기에서 한국의 과학기술계와 대학이 위기이자 중요한 분기점에 와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부에서는 학령인구가 세계 기록을 세우며 가파르게 감소하고, 훌륭한 인재들이 한국 대학의 연구 현장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 유럽, 중국 등이 한국의 우수 연구자들을 빨아들이고, 막대한 자본과 에너지가 필요한 인공지능(AI) 무한 경쟁도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그래도 항상 역사는 '위기가 곧 기회'였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고, 여기에서 희망을 찾는다. 나는 과학하는 마음은 과학자만 갖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과학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며,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처방을 제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또 무언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라 씨앗을 심고, 터전을 만들며, 집을 짓고, 길을 닦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다음주면 대한민국의 21대 대통령이 선출된다. 치열한 선거전 속에 여야 모두 국민 통합, 경제 활성화, 공정의 회복 등 메시지를 경쟁적으로 내고 있다. 중요한 얘기다.
하지만 경제, 기업, 민생, 일자리, 복지, 국방 등 국가의 근본을 떠받치는 모든 자리에 과학기술이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연구개발 예산을 늘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국민들의 '과학하는 마음', 그리고 '과학기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일 것이다.
[원종필 건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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