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처음, 아기도 처음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출산 후 분비된다는 옥시토신의 힘일까. 한번 더 낳는다면 그땐 정말 더 잘 낳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 어디에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통은 어찌 견디면 좋을지 알 것 같았다.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갖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파수 이후 곧바로 진통이 시작되었고 초산임에도 진통 시간이 짧았다. 계획했던 대로 무통주사를 사용하지 않고 회음부 절개와 제모, 관장을 하지 않고 분만했다. 경험 많은 조산사들의 도움이 컸다. 특히 한국어가 가능한 재일조선인 조산사가 진통과 분만 과정을 전담하고 출산 뒤 회복을 도왔다. 다른 조산사들 역시 다정하고 전문적으로 산모가 원하는 출산과 출산 이후의 삶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출혈이 조금 있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간단하게 처치한 후 위층으로 이동했다. 회복이 빨라 링거 받침대를 밀며 걸어서 개인실로 들어섰다. 문 앞에는 이름이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4박5일 동안 지낼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산모와 아기에게 필요한 검진을 받고, 아이에게 젖을 어떻게 물리는지, 분유는 어떻게 타는지, 기저귀 교체 방법과 목욕 방법, 산모의 몸과 기분은 어떤지 등을 확인하고 배운다고 했다.

모유 수유를 할 계획이었기에 산모와 아기가 함께 지내는 모자동실을 하겠다고 했다. 원하는 대로 지원하겠지만 산모 역시 회복이 필요하니 피곤하면 언제든 아이를 맡기라고 했다. 아기를 목욕시키고 체중을 재며 검진하는 오전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이와 함께했다. 직감과 본능에 따라 젖을 물리고 또 물렸다. 수유할 때마다 분만 후 배출되는 질 분비물인 오로가 나오는 것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젖을 물리는 것이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놀랐다.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가 분만만큼이나 힘든 것이 모유 수유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해도 젖 물리는 법을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먹고는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우는 아기를 부여잡고 자세를 바꿔 가며 유튜브, 블로그, 인터넷 카페를 헤매고 또 헤맸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수유실로 내려가 조산사의 도움을 받았다.
모유 수유를 하고 싶었던 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젖을 먹이고 싶어서였다. 그러려면 출산 뒤에 힘들더라도 젖을 계속 물려야 한다는 말에 30분, 1시간 간격으로 수유했다. 초반에는 아기 체중이 쑥쑥 빠져 분유로 양을 보충해야 했는데 얼마 정도를 주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파트너는 많이 주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그러면 아기가 젖병을 빠는 것에 익숙해져 젖을 물게 되지 않게 된다며 조금만 보충하고 더 자주 젖을 물리겠다고 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조산사는 너무 걱정 말라며 젖양은 점차 늘 것이고 아이가 필요한 정도와 맞춰질 거라며 나의 계획을 점검하고 지지해주었다. 하루 종일 젖을 주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또다시 젖을 주고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아기는 젖 먹는 법을 익혔고 나는 젖 물리는 법을 배웠다.
눈을 감으면 아기 숨소리가 들렸고 눈을 뜨면 아가가 눈앞에 보였다. 믿을 수 없이 신기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어쩔 줄 모르던 순간들도 있었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를 아직 소화를 하지 못해 힘들어한다고 생각하고는 계속해서 등만 쓰다듬다가 자지러져서, 조산사한테 도와달라고 울먹이기도 했다. 분유를 먹여 겨우 달래고는 잠이 든 아기 옆에서 숨죽여 울었다. 아직 잘 몰라서 미안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정말 너무너무 모르겠어, 라고 말하며.

매일 아침 조산사가 찾아와 한국어와 영어, 쉬운 일본어로 산모의 건강을 확인했다. 산후우울증 검진을 위한 영어로 된 검진표도 챙겨주었다. 출산 과정을 평가하는 설문지에서 나는 이 모든 과정이 기쁘고 놀랍고 감사한 여정이었다고 썼다. 내가 원하는 대로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나의 언어·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주었던 병원의 도움이 컸다고 말이다.
열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는 과정은 정말로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물론 분만 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옥시토신과 망각의 힘이 크겠지만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낳는 경험은 흥미롭고 흥분되며 아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멋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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