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는 소주” 필리핀 일상 파고든 한국인의 진로
필리핀 현지화 성공…글로벌 넘버원 박차
한낮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지난 19일 오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삼겹살라맛’(Samgyupsalamat)으로 들어서는데 입구부터 떠들썩했다.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가며 소주잔을 들고는 “타가이(건배)”를 외치는 현지인들로 왁자지껄했다. 상추쌈을 입안 가득 넣은 골디(22)는 “소주 안주로는 삼겹살이 최고”라며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친구들과 진로 소주를 즐긴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을 쏙 빼닮은 술을 나누는 풍경이 마닐라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걸 목격한 순간, 이날 오전 필리핀 최대 유통·부동산 기업 SM그룹의 ‘몰 오브 아시아’(Mall of Asia)에서 만났던 시아(32)가 생각났다. 그녀는 “K드라마를 매일 보는데 한국인처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싶어 하이퍼마켓에 자주 들른다”며 “떡볶이와 김치 볶음밥도 안주로 그만”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3위 규모의 복합쇼핑몰에 있는 하이퍼마켓 중앙에는 진로 소주가 가득 진열돼 있다.
필리핀 서민들이 많이 찾는 슈퍼마켓 ‘퓨어골드’(Puregold)에서도 진로를 거리낌없이 장바구니에 담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장에 빼곡히 차 있는 하이트진로의 프레시, 자몽, 딸기맛 등 소주를 보면 필리핀의 일상을 파고든 진로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퓨어골드 관계자는 “한국 음식점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수입 소주인 진로를 ‘데일리 술’로 많이 찾고 있다”면서 “최근 1~2년 사이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필리핀 상류층도 소주를 마실까 싶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부촌 지역 마카티에 위치한 회원제 창고형 할인 매장 S&R에서 만난 밀리 할머니(81)는 “매번 돼지고기를 삽겹살처럼 얇게 썰어서 사간다”면서 “주말에 가족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S&R 매장 직원은 “K팝 팬과 한국 드라마 애청자들이 소주를 많이 찾는다”며 “알코올 도수가 30~40도인 전통주와 달리 진로는 깔끔하고 목넘김이 부드러워 인기”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소주 대중화를 넘어 진로 대중화가 성공한 데는 ‘한류바람’이 한몫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집에서 K드라마를 즐기다보니 한국의 술문화까지 현지인들의 안방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은 “필리핀에는 타가이(TAGAY·건배), 풀루탄(PULUTAN·술과 음식을 함께), 팀플라도(Timplado·소주에 탄산음료·주스·커피·우유 등을 혼합해 즐기는 믹싱문화) 등 음주 문화가 있다”면서 “현지화 전략에 따라 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와 음료를 적극 알려왔는데 제대로 통했다”고 말했다.

현지 유통채널 다변화도 진로 대중화를 이끌었다. 진로 소주는 필리핀 현지 최대 유통사인 PWS와 SM그룹이 운영하는 마트, 전국 4000개 매장을 둔 세븐일레븐 등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관세청에서 집계한 지난해 소주 수출액 중 필리핀 시장 비중이 67%에 달할 정도다. 한국 음식점이나 교민들이 주소비층이던 과거와 달리 현지인들이 한국 소주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면서 지난해에는 과일 소주(청포도에 이슬 등)가 아닌 일반 소주(프레시) 판매 비중이 68%로 커졌다. 하이트진로의 필리핀 법인 설립 첫해인 2019년 9000만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 110억원까지 급증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사장은 “단순히 수출 증가를 넘어 진로 소주가 한국의 문화와 감성을 전하는 현지인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면서 “진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넘버원’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마닐라 |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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