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ㅣ기막히게 곧고 끝내주게 향긋한 '꽃갈피 셋' [뉴트랙 쿨리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5. 5. 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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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아이유 /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아이유는 지난 2014년부터 '꽃갈피'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노래들을 다시 부르는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꽃갈피'는 단순한 재해석을 넘어 오래된 기억의 서가에서 먼지를 털고 꺼내 든 책처럼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한 번쯤 다시 펼쳐보고 싶은 마음의 흔적들을 수집하는 작업이다. 마치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발견한 네잎클로버나 꽃잎처럼, 한 시대의 청춘이 정성껏 눌러놓은 감정의 흔적들을 아이유는 자신의 목소리로 조용히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꽃갈피'는 과거의 음악과 현재의 감성을 연결하며 잊힌 순간들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오는 다정한 의식이 되었다.

2014년, 아이유는 조덕배·김광석·이문세·산울림·김현식·클론 등 한국 대중음악사의 주요 아티스트들이 남긴 노래들을 첫 번째 '꽃갈피'에 눌러 담으며 그 여정을 시작했다. 이어 3년 뒤 두 번째 '꽃갈피'에서 양희은·이상은·소방차·들국화·정미조 등 또 다른 이름들을 꺼내어 현대의 청자에게 따뜻하게 건넸다. 두 앨범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시간을 건너온 음악들이 어떻게 지금의 감성과 맞닿을 수 있는지를 조용히 입증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꽃갈피'는 닫혀 있었다. 불쑥 열기엔 너무 귀했고, 그래서 다시 펼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27일, 마침내 세 번째 '꽃갈피'가 펼쳐졌다.

아이유 /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아이유는 '꽃갈피 셋'에서 부활, 박혜경, 서태지, 롤러코스터, 신중현과 엽전들, 화이트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들었다.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네버 엔딩 스토리)',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처럼 시대를 넘어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곡들이 아이유의 목소리로 다시금 현재로 호명됐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단순히 다시 불린 것이 아니다. 아이유는 원곡이 담고 있던 감정의 결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읽어내며 원작자에 대한 깊은 존중을 담아 각 트랙을 조심스럽고도 정갈하게 떠냈다.

특히 'Never Ending Story', '빨간 운동화', '네모의 꿈'처럼 상징성과 감수성이 뚜렷한 곡에서는 편곡의 방향부터 보컬의 호흡까지 철저히 원곡의 정서를 존중하는 태도가 배어 있다. 그 어떤 과장도 자의적 해석도 없이 시간을 건너온 곡들이 가진 순도를 가능한 한 손상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아이유는 원곡에 말을 걸되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의 감각 위에 조용히 어제를 얹는다.

아이유 /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미인'이다. 이 곡에서 아이유는 오히려 '해체'라는 방식을 택한다. 바밍타이거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이 리메이크는 단지 원곡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분해하고 새롭게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은 단순한 실험이나 전위적 시도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곡은 '한국 록의 대부'라 불린 신중현의 정신을 계승하는 태도로 읽힌다.

신중현은 서양의 로큰롤이 국내에 생소하던 시절, 단지 그것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감정과 정서를 입힌 '한국적 로큰롤'을 창조한 인물이다. 그는 록이라는 외래 장르를 한국적 문맥 안에서 재구성했고 이를 통해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꿨다. 신중현의 '미인'은 바로 그런 창조적 번안의 대표작이었다. 서구적 틀에 한국인의 정한(情恨), 리듬의 위트와 절제된 열정을 녹여냈던 이 곡은, 한 시대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음악의 생명력을 움튼 작품이었다.

아이유는 그 유산 앞에서 무릎을 꿇기보다 그것과 나란히 서는 방식을 택한다. 아이유의 '미인'은 원곡의 사운드를 해체하고 장르의 구획을 흔들며, "모두 사랑하네"라는 가사의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퉁명한 보컬로 시대적 감수성을 교차시킨다. 바밍타이거의 전복적인 프로덕션과 아이유의 유연한 보컬은 신중현이 시도했던 낯설고도 힙한 감각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말한다. 그렇게 이 곡은 시간의 결을 관통하며 미학적 태도를 공유한다.

아이유 /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타이틀 곡인 부활의 명곡 'Never Ending Story'의 이야기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특히 이 노래는 발매와 동시에 멜론 실시간 차트 6위, 최고 순위 2위까지 치솟으며 아이유의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여전히 유효한 저력임을 입증했다. 17년간 청자와 정서를 공유하며 쌓아온 아이유의 음악적 공감력은 세대와 세월을 뛰어넘는 연결 고리로 작용했다.

원곡은 김태원의 손끝에서 태어난 2000년대 초반 한국 록 발라드의 정수다. 단선율 기반의 서정적 피아노 인트로, 이어지는 웅장한 스트링과 디스토션 기타는 감정의 고조를 직선적으로 끌어올린다. 정단의 보컬은 선율 위를 파고드는 듯한 밀도로 사라진 사랑에 대한 절절함을 실어 나른다. 기술적으로도 극적 전개에 충실한 이 곡은 3단계에 걸쳐 점층적으로 감정선을 높이고, 후반부에서는 기타 솔로와 보컬 애드리브로 록 발라드 특유의 파열 지점을 형성한다.

아이유는 이 곡을 다시 음미하는 태도로 접근한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가사와 멜로디의 미세한 결을 따라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서동환의 몽환적 편곡은 피아노와 스트링을 중심에 두고, 감정의 급격한 고조 대신 여운이 길게 남는 무드를 조성한다. 목소리는 힘을 덜고 호흡을 남긴다. 기교보다 감정, 과시보다 잔상. 이것이 이번 버전이 가진 미덕이다.

부활이 고백의 노래라면, 아이유는 회상의 노래다. 같은 멜로디가 그리는 시간의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둘 다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꽃갈피 셋'은 세대를 가로지르는 기억의 연결망이며 아이유라는 아티스트가 시간을 대하는 방식이다. 곡마다 서로 다른 감성과 해석을 지닌 편곡자들과의 협업은 이 프로젝트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청각적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이유는 그 모든 곡을 경외나 기교가 아닌 섬세한 이해와 조율로 품었다. 덕분에 이 앨범은 과거를 오늘의 감정으로 번역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범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열릴 '꽃갈피'의 다음 장면들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한 아티스트가 시간과 기억을 대하는 태도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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