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석수선의 K-디자인 이야기…감정을 설계하는 시대-①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의 디자인은 '아름다움'이라는 전통적 미학의 개념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기억, 상호작용을 다루는 '감정 구조 설계'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인해 브랜드, 도시,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 중심의 디자인 전략이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관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장치가 아닌, 감정적 몰입과 정체성 형성의 핵심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는 무언가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소비자는 브랜드나 도시가 제시하는 이야기로 들어가 그 안에서 자신만의 경험을 구성하고 공유하는 '서사의 주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감정 중심의 서사 설계는 콘텐츠와 공간을 경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으며, 그 핵심 도구로 세계관 디자인이 떠오르고 있다.
세계관 디자인은 원래 영화, 게임, 소설 등 픽션 콘텐츠의 세계 설정 개념에서 출발했다. 최근에는 도시 브랜딩, 관광 콘텐츠, 브랜드 캠페인 등 현실 공간에도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 목적은 사용자에게 단순한 정보나 이미지를 접하는 것을 넘어, 서사 안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참여하도록 설계하는 데 있다.
예컨대, 서울 명동을 방문한 관광객이 쇼핑만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K-POP 아티스트의 세계관 속 '스토리 라인'을 따라 명소를 방문하고,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가상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의 체험을 생각해보자. 이는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이야기 참여형' 감정 체험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 설계를 중심에 둔 세계관 디자인은 공간을 다시 해석하고, 도시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세계관 디자인은 도시 브랜딩에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욕시가 2023년 시작한 'We ♡ NYC' 캠페인은 그 대표 사례다. 팬데믹 이후 시민들의 연대와 회복 의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이 캠페인은, 전설적인 'I ♡ NY' 로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감정적 메시지를 공동체적 맥락으로 확장한 시도다.
로고의 변화뿐 아니라, 시민이 도시의 정체성을 감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공공미술, 해시태그 캠페인, 지역 기반 행사 등이 병행됐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더 이상 행정적 공간이 아닌,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서사의 장'으로 기능했다.

유사한 시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대 유적 도시 알울라에서도 나타난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현대 예술 공간을 감정적으로 연결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몰입형 관광 경험을 제공한다. 과거를 전시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세계관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공동체의 '감정 연결망'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 기후 위기, 사회적 단절과 같은 현대의 복합적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실질적 물질보다 '정서적 안정'과 '공감의 경험'을 더욱 갈망하고 있다.
감정 중심의 디자인은 도시를 둘러싼 물리적 구조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도시의 벽화, 공공예술, 스토리 텔링형 가이드 콘텐츠 등이 감정을 매개로 사용자와 도시를 연결한다. 이로써 도시 공간은 정보의 전달 수단이 아니라, 감정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관광 산업, 커뮤니티 조직, 공공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고유한 세계관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전파하는 로컬 콘텐츠 프로젝트들은, 외부인의 방문을 단순한 소비로 그치지 않게 하고 지역민과의 정서적 교류를 가능케 한다.

세계관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과는 미적 감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감'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며, 사람들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가 된다. 이는 오늘날의 사회가 기술과 정보에 의해 고립되고 단절되는 것을 넘어, 다시금 공동체의 감정을 회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술은 더 이상 감정을 차단하는 장벽이 아니라, 감정을 증폭시키는 수단이 된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기술이 결합한 디자인은 더욱 정교한 감정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도시와 공간은 '현실'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사용자는 그 안에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세계관 디자인은 도시와 브랜드, 나아가 우리 삶의 무대를 '하나의 이야기'로 바꾸는 예술이자 전략이다. 감정과 기술, 공간과 이야기가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도시를 단지 '사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로 인식하게 된다. (계속)
석수선 디자인전문가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사(영상예술학 박사). ▲ 연세대학교 디자인센터 아트디렉터 역임. ▲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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