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뉴욕 속의 또 다른 세상, 차이나타운

2025. 5.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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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지난 기고에서 투 브리지스를 조명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 서쪽에 자리한 '도시 안의 또 다른 도시(A City Within a City)'라 불리는 차이나타운으로 시선을 옮긴다. 좁은 골목 사이로 퍼지는 수증기와 향신료 냄새, 붉은 한자 간판으로 빽빽이 채워진 거리 풍경은 이질적이면서도 기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뉴욕 속 또 하나의 세상처럼 다가온다. 차이나타운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이곳은 이민자들의 생존과 저항의 서사가 층층이 축적된 자생적 공동체의 공간이자,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가장 농밀한 정체성이 응축된 장소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으로 리틀 이탈리, 동쪽으로 로어 이스트 사이드, 서쪽으로 트라이베카를 접하며, 모트 스트리트(Mott St.)와 멀베리 스트리트(Mulberry St.)를 따라 전통 상권이 밀집해 있다. 지역의 중심에 자리한 콜럼버스 파크(Columbus Park)는 여전히 일상과 소통이 교차하는 공동체의 심장과도 같은 공간이다. 차이나타운의 얼굴인 캐널 스트리트(Canal St.)는 저렴한 임대료와 뛰어난 접근성 덕에 노점상과 소매상점이 밀집한 거리로, 명품 모조품 쇼핑지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에는 보석 무역의 중심지였고, 월드트레이드센터 건설로 라디오 로우(Radio Row)가 사라진 이후에는 뉴욕의 전자부품 유통 중심지로도 기능했다.

차이나타운의 공간적 입지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뉴욕 최악의 슬럼이었던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가 자리했던 콜렉트 폰드(Collect Pond)의 매립지와, 이름 그대로 그 배수로였던 캐널 스트리트 일대의 연약한 지반 때문에 고층 개발이 어려웠고, 그로 인한 낮은 경제적 가치로 인해 중국계 이민자들의 점유가 허용되었다고 회자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청과 법원에 인접한 입지를 고려한 중국인 특유의 전략적 정착이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결국 두 해석 모두, 선택이 아닌 제약의 결과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 정착은 배제와 차별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지금도 도시 공간에 새겨진 사회적 불평등의 흔적이다.

미국 차이나타운의 기원은 영화 '황비홍(1991)'의 한 장면에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황금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선전극의 무대 뒤에는, 강제노동과 인종차별, 제도적 고립이라는 이민자의 현실이 숨어 있다. 19세기 중엽 골드러시와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계기로 광둥성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 서부로 대거 유입되었고, 이후 탄압을 피해 뉴욕으로 이주해 모트와 도이어스 스트리트(Doyers St.)에 자리를 잡았다. 세탁소와 식당을 기반으로 자급자족 공동체가 형성되었지만, 1882년의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은 지역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었다. 이후 1940-60년대에는 중화민국 국공내전 이후 홍콩계와 대만계 이민자들이 차이나타운에 정착했다. 1980년대에는 푸저우 출신 이민자들이 이스트 브로드웨이 일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며 자리를 잡았다. 초기에는 언어와 문화적 갈등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광둥계, 대만계, 푸저우계를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가 뒤섞여 살아가는 지역사회로 발전했다. 1990년대 중반, 홍콩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계 이민이 다시 본격화되었고, 이는 영화 '첨밀밀(Comrades: Almost a Love Story, 1996)' 속 주인공들이 이별 후 각자 뉴욕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이야기와 겹쳐진다. 낯선 도시에서 서로에게 잠시 기대었지만, 끝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들처럼, 당시의 차이나타운은 많은 이들이 머물렀지만 정착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등려군(Teresa Teng)의 전설적인 노래인 '월량대표아적심'이 흐르고, 두 사람이 운명처럼 다시 마주치기 전 각자 스쳐 지나던 차이나타운의 거리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이민자 정체성이 머무르고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도시적 경계공간임을 은유한다.

오늘날 맨해튼 차이나타운은 관광객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이자 미식의 명소로, 뉴욕 시민들에게는 서로 다른 시간과 이야기가 겹쳐진 독특한 장소다. 오래된 딤섬집과 트렌디한 바, 전통 약방과 갤러리가 나란히 공존하며, 이질적인 문화와 계층이 일상처럼 교차한다. 이곳은 단순한 이민자 정착지가 아니라, 이방인의 삶과 기억이 공존하는 흔적이다. 생존과 적응, 단절과 연결이 끊임없이 교차해온 이 지역에는, 여전히 어디에 속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스며있다. 차이나타운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은 가장 밀도 높은 이야기이며, 멈추지 않는 서사이다. 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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