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성별에 '트랜스젠더' 썼더니···호기심에 불러봤다는 면접관 [H공약체크]

유대근 2025. 5.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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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 전보다 더 후퇴한 성소수자 공약 ]
박근혜 정부도 차별금지법 추진했는데···
주요 후보 중 차별금지법 찬성은 권영국뿐
이재명 "방향 맞지만 갈등 심화로 할 일 못해"
김문수 "성소수자에 취업 특혜 역차별" 주장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의 제26회 서울퀴어문화축제 불참 입장을 규탄하며 안창호 인권위원장에게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신이 이력서에 성별을 트랜스젠더라고 써서 (호기심에) 면접장에 불러봤다'고 하고는 떨어뜨리는 기업도 있어요. 노골적인 차별 탓에 고용시장에 진입조차 못 하는 성소수자가 많죠.
김한울 노무사(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소속)

성소수자들이 취업 등 일상에서 겪는 차별이 여전함에도 6·3 대선에선 이들의 인권 문제가 소외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 계산' 때문이다. 보수 후보들도 성소수자에게 포용적 입장을 내놨던 과거 대선 때와 비교하면 오히려 인식이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성소수자 인구는 정확히 조사된 바 없지만 국내외 연구 등을 근거로 볼 때 최소 206만 명(약 4%)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22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안 발의 '0건'

대선 투표일을 일주일여 앞둔 26일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내놓은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뿐이다. 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네 번째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다. 이 법은 성별·장애·나이·인종·종교·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금지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당하면 피해자를 구제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동성애 문화를 번지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반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두 후보는 소극적이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1차 TV토론에서 권 후보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지 묻자 “방향은 맞다고 보지만 새롭게 논쟁, 갈등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될 일들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2017년 조기 대선 때도 더불어민주당 경선 주자로 나섰었는데 당시에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겠다"(제33회 한국여성대회 발언)고 말한 바 있다. 다만 2017년 대선 때는 민주당 내 '1강'인 문재인 당시 후보를 추격하는 대항마였다면 지금은 대권과 가장 가까운 선두주자로 입장이 바뀌었다. 개신교계 등 보수 진영의 표심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후보의 입장은 이례적이지 않다.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정치권의 노력은 최근 몇 년 새 후퇴해왔다. 21대 국회(2020년 5월~2024년 5월)에서는 장혜영(정의당)·이상민(당시 민주당→현 국민의힘)·권인숙(민주당) 당시 의원 등이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안을 내놨었지만 22대 국회(2024년 6월~)에서는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몽(활동명)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보수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이 국정과제에 포함됐었고 법무부 산하에 차별금지법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도 했다"며 "당시 법 제정의 실질적 진척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부 차원에서 형식적인 수준에서라도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은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김문수 후보는 노골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며 상대 후보를 때리는 소재로 활용한다. 그는 지난 20일 방영된 방송 연설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특혜를 준다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이재명 후보가 2017년 3월 한국여성대회에서 "공공기관, 금융기관에 소위 성소수자가 30%를 반드시 넘길 수 있도록, 한쪽 성비가 70%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한 발언을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 후보의 발언은 맥락이나 행사의 성격상 여성 비율이 30%는 돼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OECD 중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는 2곳뿐

차별금지법을 오래 연구해온 조혜인 변호사는 "성소수자가 취업 이후 직장 내에서 겪는 문제는 근로기준법 등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면접 등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은 적용할 법이 없다"며 "실제 면접 때 '말투가 여성스럽거나 남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차별당해 탈락하는 성소수자가 많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주민등록번호상 성별 코드(일곱 번째 자리)를 바꾸기 어려워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 후보들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입장이 28년 전 대선 후보들의 입장에서 진일보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1997년 열린 15대 대선에서는 주요 후보들이 한겨레신문 인터뷰를 통해 역대 처음으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3일 시민들이 서울역 대합실 TV로 제21대 대통령선거 2차 후보자 토론회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동성애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에 기반한 점을 고려해 무조건 이단시해서는 안 된다"며 "동성애자 운동도 인권 보장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또, 보수 진영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동성애자들의 성생활도 인정받고 인권도 보장돼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그러나 이들의 사회운동화를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몽 위원장은 "건강한 민주 사회는 동일한 정체성이나 지향을 가지고 살도록 강요하는 폭력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경험과 의견을 공론장 내에서 교류하며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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