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바친 청춘, 후유증으로 시작된 삶과의 전쟁

최현정 2025. 5. 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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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1973년 32만명 베트남 파병
장병 약 15만명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
20여년 지나 고엽제 피해 사실 밝혀져
참전용사 유족 김순교·손규매·박연화씨
남편 여의고 자식 키우며 생활고 시달려
극심한 트라우마에 가족들 두려움 겪어
전쟁 후 25년만에 고엽제 보상제도 마련
“긴 세월 외면당한 유족에 정당한 보상을”

6·25 전쟁 75년 특별기획 살아남은 자의 외침 - 2. 월남참전용사 유족들의 눈물

해방 전후로 시작된 우리나라와 미군의 관계는 6·25 전쟁에 이어 베트남 전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4년 7월. 베트남 해외 파병을 위한 제1차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파병된 우리나라 국군 장병의 수는 약 32만명. 그 중 5099명이 전사하고 1만 1232명이 부상을 당했다. 31만여명은 살아서 돌아왔지만, 그 중 절반인 약 15만명의 장병들이 고엽제로 인한 전쟁 후유증을 앓았다. 정부는 파병을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경제원조자금을 지원받았고, 이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됐다. 고속도로는 한국 경제 발전의 분수령이 됐지만, 참전용사들은 전투근무수당을 보상받기는커녕 타 국가유공자에 비해 줄곧 소외돼 왔다. 유족에 대한 처우도 마찬가지다. 전쟁 후유증으로 남편, 혹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거나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지만,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

■ 전쟁 후유증인 줄도 모른 채 고통 속에 살아온 참전용사들

고엽제. 잎사귀를 말라 죽이는 제초제다. 인체에 각종 병을 유발하는 다량의 독성이 들어있어 현재는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1960~1970년대 베트남전 당시만 해도 유해성이 밝혀지지 않아 전쟁에 사용됐다. 베트남전에 사용됐던 고엽제로는 에이전트 오렌지가 유명하다. 미군은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을 상대로 항공기를 이용해 고엽제를 살포했다. 대외적으로는 베트남 정글에 서식하는 모기를 박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베트콩이 은신한 산림을 파괴하고 식량 보급선에 타격을 가하는 게 목적이었다.

고엽제는 치사량이 0.15g으로 청산가리의 1만배, 비소의 3000배에 이를 정도로 강한 독극물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분해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돼 10년~25년이 지난 후에도 신체적 후유증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신경계 손상에도 영향을 미쳐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세에게 유전돼 기형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미 환경청(EPA)은 1979년 고엽제의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때문에 참전용사들은 미군이 공중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살포한 고엽제를 ‘오렌지향이 나는 물’ 정도로 생각해 받아마시거나, 살포된 지역에 복무하며 고엽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참전 용사들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조국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의무, 열정과 도전정신 등을 이유로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섰지만 헌신의 대가는 후유증이었다. 귀국한 뒤 장병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규명하지 못해 근본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고엽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이 수많은 장병들이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거나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고엽제로 인해 피해를 겪은 사람만 14만 9711명(지난해 10월 기준)에 이른다. 고엽제 후유증에는 폐암, 염소성 여드름, 버거병, 당뇨병 등을 포함한 24가지가 있다.

■ 전쟁의 상처 함께 감내해야 했던 유족들

유족들도 전쟁의 상처를 함께 감내해야 했다. 전쟁 후유증으로 남편을 일찍 떠내보낸 아내는 자식들을 홀로 키워야 했고, 병마와 싸우거나 트라우마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아버지와 함께 산 가족들 역시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월남참전자회 강원도지부 유족회장인 김순교(74)씨는 30여 년 전 전쟁 후유증으로 남편을 잃었다. 슬하에 삼남매를 둔 김 씨는 어린 자녀들을 키워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김 씨는 “작은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남편이 사망했으니 애들을 키우려면 청소, 식당, 가정부 등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며 “30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했더니 손가락이고 무릎이고 관절이 다 망가지고, 병만 남았다”며 제때 치료하지 못해 굽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이어 “남편이 매일 소화가 안돼서 위장약을 타먹다가 암으로 발전해서 수술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병원비를 지원해준다거나 참전수당을 받거나 하는 혜택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손규매(77)씨도 전쟁 후유증으로 30여 년 전 남편을 잃었다. 손 씨는 “남편은 늘 온몸이 가렵다고 했고, 소화가 안 돼 자주 구토를 했다. 나중에야 그게 고엽제 때문인 줄 알았다”며 “그때만 해도 장애 등급을 받는다고 해서 지원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30년 넘게 일을 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그만하라고 하더라”며 “밤마다 애들 몰래 울면서 버틴 날들이 생각난다.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벌써 80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고 했다.

박연화(74)씨의 남편은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박 씨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였다”며 “매일 밤마다 ‘죽여! 죽여!’ 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애들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며 무섭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매일 공포에 떨면서 살아온 애들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박 씨의 남편은 10년 전 쓰러진 뒤 네 차례의 수술 끝에 세상을 떠났다. 박 씨는“장애 등급을 받아야 고엽제 후유증 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이미 돌아가신 후라 신청이 안 된다고 하더라. 너무 억울했다”고 했다. 그는 “나도 몽골까지 가서 식당일을 하며 참 고생을 많이 했지만, 유족회에 나와보니 다들 자식들을 키우려고 얼마나 고생들을 했는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며 “애들 키우느라 노후 대비도 못해서 아직도 땡볕에 나가 가로수 풀을 뽑고, 아픈 몸으로 청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월남참전 후유증으로 남편을 일찍 여읜 유족들이 본지와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영 기자

■ 이제라도 유족 승계, 정당한 보상 이뤄져야

1993년 고엽제 후유증, 후유의증 환자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해당 법률은 1997년과 1999년에 전면, 일부 개정되어 보상 제도가 확립됐다. 이에 월남참전자회 회원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뒤 약 25년만에 보상을 받게 됐다. 고엽제 후유증, 고엽제 후유의증에 해당하는 장애등급을 받으면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유족도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25년이라는 공백’ 기간에 사망한 이들에 대한 보상은 전무한 상태다. 월남전참전수당 역시 타 국가유공자와 달리 유족 승계가 되지 않아 현재 유족이 받는 보상은 배우자수당 10만원이 유일하다.

김순교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당시에는 참전수당도, 고엽제 보상제도도 없었다”며 “국회, 법원을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제라도 유족 승계가 되거나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연화씨 역시 “월남참전용사들이 벌어온 돈으로 고속도로도 닦고 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됐다는데, 정작 유족들은 오랜 시간 외면 받아왔다”며 “이제라도 유족 승계가 이뤄져 남은 인생 마음의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정성 월남참전자회 춘천시지회장은 “똑같이 월남에 가서 목숨 걸고 싸웠는데, 누구는 지원을 받고, 누구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지금 유족들은 남편이 죽고 나면 참전수당도 끊기고, 배우자수당 10만원 받는 게 전부다.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들에게 이제라도 마땅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29일은 제3회 해외 파병용사의 날 및 월남전참전 61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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