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한 희생 잊히지 않도록 노력할 것”

김민정 기자 2025. 5. 2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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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수 4·19 혁명 공로자회장

- 4·19 도화선된 고려대 의거 참여
- 회원 한때 800명…현재는 200명뿐
- 국가공휴일 지정·공로자 예우 노력

문정수(86) 전 부산시장이 국가유공자 보훈단체인 4·19 혁명 공로자회장으로 선출됐다. 다음 달 1일부터 4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문 회장은 27일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19 혁명 정신은 언제나 이어져야 한다”며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했던 희생이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이 27일 보훈단체인 4·19 혁명 공로자회장으로 선출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원준 기자


4·19 혁명의 계기가 된 1960년 3·15 선거 전부터 장이욱 전 서울대 총장 등의 주도로 공명선거추진전국위원회가 운영됐다. 부정선거가 예상되는 만큼 ‘공정 선거로 독재 권력을 막자’는 목표였다.

고려대 3학년 시절 문 회장은 해당 위원회 산하 학생 조직에 몸을 담아 2·28 대구 학생의거로 체포된 학생들 석방 운동에 힘을 보탰다. 그는 “서울에서 열린 대형 3·1절 행사에서 체포된 학생들을 석방하라는 내용의 ‘삐라’를 뿌리기로 했다. 외투 안에 전단을 잔뜩 숨기고 걸어갈 때 체포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결국 전단을 배포하고 무사히 탈출하는데 성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문 회장은 4·19 혁명의 직접 도화선이 된 4·18 고려대 의거에도 참여했다. 4·19 혁명 공로자회는 이처럼 당시 혁명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이들을 회원(부상자 제외)으로 해 4·19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국가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때 회원 수가 800여 명에 이르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현재는 약 200명 밖에 남지 않았다.

문 회장은 “4·19 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금자탑”이라며 “하지만 공로자들도 점점 줄어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지는 만큼 젊은 세대는 잘 모르는 듯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헌법 전문에도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지 않나. 그만큼 중요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이 잊혀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문 회장은 정치 생활을 하면서도 4·19 혁명 정신 계승을 위한 일을 잊지 않았다. 그는 “서울 강북 수유리에 국립 4·19 묘지가 있다. 원래는 ‘국립’이라는 명칭이 없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 붙었다. 제가 당시 민주자유당 사무총장으로 있어 이 같은 과정을 살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4·19 혁명 국가 공휴일 지정 ▷공로자 의료비 감면 혜택 확대 ▷국가보훈처 수당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문 회장은 “공로자들이 노령화하면서 예우 문제가 더욱 대두되고 있다. 공로자들이 더욱 예우받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1939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를 졸업한 문 회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신민당에 입당해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와 신민당 총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1985년 12, 13, 14대까지 국회의원 3선을 지냈다. 민주자유당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선 초대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시장 재임 시절 문 회장은 부산바다축제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시작했고, 하나로교통카드 시행으로 교통카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남포동 부산시청사를 연제구 연산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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