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지사님께 일독을 권함 [전국 프리즘]


오윤주 | 전국팀 선임기자
대통령 선거 운동이 막바지다. 탄핵 이후 국민도, 후보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제 일주일이 지나면 새 대통령이 나온다.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한다. 지지 후보의 당락을 떠나 광장에서, 거리에서 지엄한 권력자들의 절을 받던 유권자로서 호사 또한 일주일 뒤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적잖은 유권자 경험에 비춰보면 당선자와 후보자는 천양지차,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국민의 표로 선출된 당선자는 권(權)과 힘(力)을 지닌다. 대통령뿐 아니라 자치단체의 장, 국회·지방의회 의원 또한 정도의 차는 있지만 저마다 권력을 지닌다. 대개 권력을 잡은 이는 적어도 다음 선거 전까지는 국민이 유권자였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또한 씁쓸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선거는, 투표는 힘이 세다. 바라는 만큼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권력 이동엔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긴 자가 모두를 가지는 승자독식의 제도 아래서는 더하다. 따라서 신중하게 표를 던져야 한다. ‘최선보다 차악을 선택하는 게 선거’라는 우스갯소리가 귓등으로 들리지 않는다.
선거로 뽑힌 이들은 공직자가 된다. 요샌 ‘선출된 공직자’보다 ‘어쩌다 공무원’, ‘어공’이란 말이 익숙하다. ‘어공’도 발탁·천거 등 여러 길이 있지만 선거를 통한 ‘어공’이 많다. 공무원 시험 등을 거쳐 임용된 ‘늘 공무원’, ‘늘공’에 비견된다. ‘늘공’과 ‘어공’은 공직 안에 공존하지만, 대개 ‘어공’은 ‘늘공’에 견줘 센 힘을 발휘한다.
김영환 충북지사가 그러하다. 김 지사는 2022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8기 충북지사가 됐다. 임기 4년 후반부를 달리는 지금, 적잖은 ‘어공’의 권한을 누린다. 해방 뒤 민선·관선을 포함해 36번째 충북지사가 된 그의 도청 바꾸기는 가히 ‘역대급’이다.
그의 지시로 1937년 충북도청 건립 당시 심은 아름드리를 포함해 도청 정원 나무 520그루 가운데 70% 넘게 베거나 이동하는 ‘도청 리모델링’을 강행했다. 연못을 메우고 잔디 광장을 만들기도 했다. 국가등록유산이면서, 직원 업무 공간이던 도청 본관은 어린이 그림책 등을 곁들인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환경단체가 “임기 4년짜리 단체장에게 100년 이상 된 나무를 제거할 권한은 없다”고 항의했지만, 그 나름의 도청 혁신은 진행형이다. 안전도 ‘디’(D)등급으로 철거를 추진하던 제천 청풍교 새활용(업사이클) 결정도 그의 힘이다.
‘어공’이 지닌 힘의 원천은 주민의 선택이지만, ‘늘공’을 압도하는 힘을 지탱하는 것은 인사권이다. ‘인사권자’로서 막강한 힘 앞에 ‘늘공’은 쪼그라들기 일쑤다. 요사이 김 지사의 인사가 구설에 오른다. 그가 임명한 김용수 충북도립대 총장은 수천만원을 들인 제주 연수에 부인을 동반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으로 직위 해제된 뒤 수사 대상에 올랐다. 애초 김 총장은 2022년 1차 공모 때 예선 탈락했다가, 2차 공모 때 1순위 후보로 부활했고, 2023년 총장이 됐다. 김 지사 측근 인사, 낙하산 인사 등 비판이 잇따랐다. 최근 김 지사가 낙점한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후보 또한 청탁금지법 위반 논란 속에 자진해서 사퇴했다. 잇단 구설에도 김 지사의 직접 사과는 없었다. 1년 남짓 남은 차기 선거 때 어떤 말로 유권자에게 표를 구할지 궁금하다.
김 지사는 최근 ‘내가 꽃인 줄도 모르고’라는 시집을 내는 등 꾸준히 시를 짓고, 인공지능 활용 노래도 내놓는다. 그의 사회적 관계망 대문엔 ‘정치가 시보다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라고 씌어 있다. 그의 시 ‘두눈박이의 이력서’를 보면, “나는 그동안 진실로 겸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걸핏하면 혼자서 떠들기 일쑤였고 남들을 가르치려 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더불어 부끄럽고, 화나고, 참을 수 없고. 치를 떤 자기 삶의 순간을 돌아본 ‘회상’ 시의 끝부분은 “그런데 그들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하였다”고 맺는다. 일독을 권한다. 그에게.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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