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꽃시단] 어느 돌의 태어남

충청투데이 2025. 5. 2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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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1941~ )
▲ Gemini AI 제작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깊은 산골짜기에도
돌이 있을까
아득한 옛날부터
홀로 있는 돌을 찾아
산으로 갔다

길도 없이 가파른 비탈
늙은 소나무 밑에
돌이 있었다
이끼가 두둑이 덮인
이 돌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을까

2천 년일까 2만 년일까 2억 년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아무도
본적 없다면 이 돌은
지금부터 여기에 있다
내가 처음 본 순간
이 돌은 비로소 태어난 것이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면 그곳에 수 많은 꽃들이 핀다 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새싹이 돋고 봄비가 내리고 여름 초록이 숲을 가득 채워도. 이윽고 단풍이 찬란하게 물들고 겨울 찬 바람 속으로 또 함박눈 펑펑 내린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너와 나의 눈길이 그곳에 가닿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면 그것은 이 세상에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여 깊디깊은 산골짜기로 찾아가 그곳에 놓인 돌 하나를 발견하고 묻느니. 너는 언제부터 이곳에 누구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는가. 너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가. 물어도 물어도 돌은 대답이 없거늘. 그것은 절대 돌이 말을 못 해 그러한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그 돌은 고독에 절고 절어서 끝내 입을 봉해버린 까닭이리라.

그렇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길 닿지 않아 쓸쓸히 생을 살다 가는 뭍 생명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2천 년 2만 년 2억 년을 그곳에 머물렀다 한들. 그것에 내 눈길이 가닿지 않는다면 그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향해 걸어야 한다. 그리고 외쳐야 한다. 거기에 숨어 있는 꽃 다 나와라. 거기 숨어서 울고 있는 돌도 다 나와라 하고.

-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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