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울산, 소설이 되다Ⅴ] 불 사랑 국경 없는 무언가 (11)

"다 먹어. 그래야 복 받아. 그릇은 그냥 두고 가."
계단을 오를 때와 달리 대웅전을 향해 걷는 노보살의 걸음은 처마에 앉은 구름처럼 가벼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짓단 안쪽이 싹싹 스치며 바람 소리를 냈다.
"대웅보전 안에 제 이름의 일년등이 걸려 있어요. 소원 성취 등이요."
선혜가 무릎 위의 공양 그릇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이어 말했다.
"진흥왕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왜 진흥왕은 동축사를 지으며 칠백 년 전 왕의 이야기를 가져왔을까요?"
"아쇼카왕은 인도의 전륜성왕이었어요. 전륜성왕은 올바른 법의 바퀴로 세상을 이끄는 군주란 뜻이죠. 진흥왕은 아쇼카왕처럼 신라의 전륜성왕이 되기를 바랐고 새 불상을 모실 절을 지으며 자신과 아쇼카왕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게 됩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믿음과 염원으로 이어진 거죠."
말을 마친 우진은 숟가락을 들어 밥과 나물이 뭉개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뒤섞었다.
"믿음을 저버리게 될까 봐 두려워요."
그릇 안에 보기 좋게 담긴 나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선혜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진이 숟가락질을 멈추고 한 걸음 떨어져 앉은 선혜를 보았다.
"전륜성왕의 서원을 세운 이도 있어요."
"아쇼카왕은 믿었을까요? 자신이 띄워 보낸 배가 칠백 년 후에 불국토에 다다를 것을요."
대답 없이 선혜의 손에 들린 공양 그릇을 가져간 우진이 대신 자신의 밥그릇을 선혜에게 주었다.
"그날 밤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들인 저예요. 아버지는 그렇게 믿고 떠나셨어요. 그렇게 믿게 해주신 분은 그쪽…… 미안해요."
"원선혜예요."
"선혜 씨고요."
우진이 밥을 비빈 후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선혜도 우진이 비벼준 밥을 한술 떠 입에 넣었다. 나물의 밑간이 세지 않아 첫맛은 담백했고 고추장 대신 맑은 간장을 두른 밥에서는 달큰한 맛이 났다. 선혜와 우진이 공양 그릇을 비우도록 경내는 드나드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오후 햇살에 석탑의 그림자가 잔디 위로 길게 늘어졌다.
"미안하다는 말 말고도…… 한마디 말이 더 들렸어요. 전화가 끊기기 바로 직전이었어요. 잡음이 심해 또렷이 들리진 않았어요."
우진은 귀를 기울이면서도 다음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기우는 석탑의 그림자를 지켜 볼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밤의 전화는 잘못 걸린 게 맞지만 누구에게도 헛되지 않았다는. 남태일 씨가 그렇게 믿고, 남우진 씨가 그렇게 믿고, …… 제가 그렇게 믿는다면요."
우진이 선혜의 빈 그릇을 가져가 제 그릇에 포개 들고는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선혜는 두 손으로 툇마루를 짚으며 신고 있는 운동화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한 손에 한 켤레 드는 게 버거워 한 번에 한 짝씩 꺼내는 두 번의 수고도 개의치 않던 작은 손이 떠올랐다. 공양간에서 나온 우진이 손바닥이 보이도록 젖은 손을 넓게 펴 햇빛 속에 내밀었다.
"그릇을 씻으며 생각했어요. 몇 시간 걸려 이곳까지 와서 제가 찾으려고 한 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요. 저는 무엇이 알고 싶었던 걸까요. 선혜 씨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까요."
선혜는 비켜선 우진의 두 손에 담긴 삼층 석탑을 보았다. 석탑은 우진의 손에 지어 올린 것처럼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 국경 없는 무언가요." (계속)

# 강이라 소설가
제24회 신라문학대상과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현진건문학상에 단편 「스노볼」이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 『웰컴, 문래』, 청소년 장편소설 『탱탱볼:사건은 문방구로 모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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