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 기계부터 코로나 주사기까지… ‘K-의료기기’ 혁신 이끈다[안전한 食·醫·藥, 국민건강 일군다]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 디지털 기술혁신 선도
6·25 전쟁을 거치며 기술 축적
1965년 첫 의료기기 수출 역사
1980년대 전자혈압계 · 보청기
다양한 수술기구 등 개발·생산
2003년 의료기기관련 단독법
2019년 의료기기산업법 제정
안전 관리 · 임상시험 지원 등
‘508兆 디지털 헬스시장’ 대비

최근 인공지능(AI) 발달과 함께 의학 분야에서도 디지털 의료기기 시장이 커지고 있다. 19세기 말 한국에 서양 의학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 명주실로 환부를 봉합한 것과 비교해 격세지감의 변화다. 한국은 조선 말 개항 이후 서양의 근대의학 도입과 함께 본격적으로 의료기기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지석영은 개항장인 부산에 내려가 종두술을 습득한 후 1879년 두 살인 처남에게 종두침을 놓으며 종두법을 보급했다. 1884년 선교사로 들어온 호러스 뉴턴 알렌이 민영익을 치료하며 상처가 아문 후 마비된 뺨을 풀어주기 위해 건전지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일종의 전기치료였다.
이같이 한국은 의료기기와 함께 서양 의학을 발전시켰다. 이후 6·25전쟁을 거치며 의약품과 위생용품·의료기기 등의 수요가 증가했고, 경제 성장과 함께 관련 분야는 급격히 발달했다. 최근에는 AI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의 혁신을 통해 또 다른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의료기기 사업도 성장 = 한국에서 초창기 의료기기로 꼽히는 ‘종두기계’는 천연두 예방을 위한 종두 시술에 쓰였던 도구로, 종두침과 종두액, 두장판 등이 한 세트로 구성됐다. 두장판에 종두액을 떨어뜨리고 두장판 위의 종두액을 종두침에 묻힌 다음 종두침으로 피부에 상처를 내어 종두액을 묻히는 방법으로 접종했다. 6·25전쟁을 거치며 환자 치료 기술이 축적됐고, 관련 기술도 성장했다. 1965년 최초로 의료기기 수출이 이뤄졌다. 1970년대 들어 의료기기 국내 생산액이 급속히 증가했다. 1960∼1970년대 한국에서 연탄가스 중독은 심각한 문제로, 매년 70만 명 이상이 연탄가스에 중독돼 3000여 명이 사망했다. 문제 예방을 위해 1969년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의 윤덕로 교수가 ‘고압산소장치’를 개발했다.
1980년대 들어 경제 발전과 함께 국내 업체들이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기 시작해 주사기와 수액세트 등 기존 생산 제품 외에 다양한 수술기구, 전자혈압계, 보청기, 초음파 및 저주파 치료기 등 의료기기들을 개발·생산했다. 관련 법도 시대에 맞게 변하는데, 한국은 1953년 의료기기와 관련, ‘약사법’을 제정할 당시 의료기기가 아닌 ‘의료용구’로 칭하며 관리했다. 이후 1997년 전면 개편된 ‘의료용구 관리제도’에 따라 의료용구의 지정 등에 관한 규정과 의료용구의 기준 및 시험 방법 작성 검토 지침, 의료용구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등을 포함해 관리체계를 확립한다.
◇의료기기 단독법 체제와 디지털 의료기기 성장 = 2003년 의료기기의 제조와 수입 및 판매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의료기기법이 제정·공포된다. 약사법의 테두리에 묶여 있던 의료기기 관련 법이 단독법으로 제정되며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활성화 및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법 취지였다. 2019년에는 사람이나 동물로부터 유래하는 검체를 체외에서 검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의료기기와 관련, ‘체외진단의료기기법’과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의료기기산업법)이 제정된다.
정부가 의료기기산업법 등 법체계를 정비한 것은 당시 의료기기 제도는 전통의약품에 적합한 시판 전 관리 중심 규제로 AI 등 첨단 디지털 기술과 디지털 의료 제품 간 융합 활성화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 디지털 의료기기 산업 시장이 커지는 상황이 고려됐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GIA) 조사(2020년)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헬스 시장은 2020년 152조 원으로 성장했고, 2027년에는 508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맞춰 의료기기산업법은 혁신의료기기의 지정 및 그에 관한 특례 등 지원과 시판 후 조사 등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했다.
정부가 규정한 혁신의료기기는 정보기술(IT)·생명공학·로봇 기술 등 기술집약도가 높고 혁신 속도가 빠른 분야의 첨단기술 적용이나 사용 방법의 개선 등을 통해 안전성 및 유효성을 현저히 개선 혹은 개선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기다. 관련 기기로 지정받은 제품에 대해 단계별 심사 및 우선 심사 혜택, 기준규격이 없을 경우는 신청 기업이 제시하는 기준 설정, 임상시험 지원 등의 혜택을 부여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급 시기에 국내 의료기기 산업 또한 발달했다. 당시 주사기에 남아서 버리게 되는 약물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최소 잔여형 주사기’(LDS)가 개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LDS의 신속한 공급을 위해 국내 주사기 업체를 대상으로 인증심사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고 품질 확보를 위한 기술을 지원했다.
정철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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