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로 LED로… 한·일 두 거장 ‘시간’을 직조하다
한지 활용 전광영
촘촘하게 연결한 삼각형 조각
하나의 꽃·별이 우주가 되기도
LED 내건 미야지마
규칙없이 무작위 깜빡이는 숫자
예측 불가능한 세상의 본모습


한국과 일본의 두 거장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다룬다. 좀 더 정확하게는 시간을 쌓고, 다듬고, 해석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하나는 30여 년 한지가 지닌 시각 언어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전광영(81) 작가의 ‘타임 블러섬’, 다른 하나는 LED 숫자 설치로 잘 알려진 일본의 미디어 작가 미야지마 다쓰오(68)의 ‘폴딩 코스모스(Folding Cosmos)’다. 이들이 시도한 시간의 축적, 중첩, 재배치는 삶의 유한함과 불완전성을 인정하며,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시간’을 축으로 직조해 낸 두 예술가의 우주를 들여다본다.

◇‘시간’을 쌓고 다듬는 수행…전광영의 ‘타임 블러섬’= 전광영 작가는 한지라는 한국 전통소재를 활용해 독특한 시각 언어를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그의 작업 방식은 우선 한지를 포개고 접고 묶어 작은 삼각형 조각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이를 다시 촘촘하게 연결하고 캔버스 위를 빼곡하게 채운다. 하나의 꽃, 혹은 별. 수백 개의 삼각형은 어느 순간 거대한 우주가 되기도 한다. ‘시간’을 축으로 상상한 작가의 세계다. 그것은 평면과 입체, 회화와 조각을 오가며 개인과 집단을 오가고, 동양과 서양을, 그리고 기억과 허상을 오가며 모든 것들의 경계를 지워낸다.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타임 블러섬(시간의 꽃)’은 제목에서부터 ‘시간’을 논한다. 대표 연작 ‘집합’과 신작 ‘품’ 시리즈까지 총 12점을 선보이는 전시는 전 작가의 모든 작업이 ‘시간의 축적’을 가시화하는 수행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유한한 세계에서, 예술로 가능한 ‘시간의 재배치’가 무엇인지 엿보게 하며 말이다. 예컨대, 작가는 30년 전 시작한 ‘집합’ 시리즈를 변주해 시간의 축적과 재배치를 동시에 일으킨다. 어린 시절 한약방 천장에 매달린 종이 약봉지에 대한 기억과, 우리의 보자기 문화가 만나 집합 시리즈가 탄생했는데, 이는 개인과 집단의 경험, 역사적 사실과 해체된 기억들을 다시 결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변화된 ‘색’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다소 무거운 색감을 선호했던 작가는 한층 밝고 환한 세계를 선보인다. 이 역시 흥미로운 지점으로, 예술 세계를 쌓고 다듬는 과정에서 작가가 감각하는 ‘시간’의 결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신작들엔 감물, 황토, 쑥, 황화, 울금, 석류 껍질 등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염료를 입혔다. 작가의 세계에 여리고 부드러운 감정이 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전시는 그대로 다정한 마음의 기록 같다. 오는 7월 5일까지.

◇영원히 점멸하는 시간…“모든 것은 변한다” 미야지마 다쓰오 개인전=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는 일본 출신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다쓰오의 신작을 선보인다. 국내 관람객들에겐 작가의 이름보다 리움미술관 입구에 영구 설치된 LED 전광판 ‘경계를 넘어서’가 더 친근할 수 있다. 바로 그 작품의 주인공이다.
미야지마 작가는 보다 직관적으로 ‘시간’을 다룬다. 이번에도 전매특허인, 규칙 없이 무작위로 깜빡거리는 LED 숫자 설치물을 대거 소개한다. 관람자는 숫자가 언제 점멸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최근 방한해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작가는 “이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다. 예측불가능한 것이야말로 세상의 본모습이다”라면서 “예술 작품도 예측불가능하게 만들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작품들이 품은 새로운 서사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다. 예를 들면, 신작 ‘C.T.C.S. 킨’ 시리즈는 고대 마야문명의 최소 시간 단위인 ‘킨(k’in)’에서 착안했다. 작가는 마야 문명에서 사용한 20진법을 이용해 숫자를 배열하고 역시 그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빨강, 노랑, 흰색, 초록, 파랑 5개 색을 가져왔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의미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인간이 모여 이뤄지는 사회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신작 대부분의 표면을 거울로 구성했다. 관람자들에겐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작품을 보며 계속 변하는 숫자, 그 사이 비쳐지는 다른 작품들, 전시장의 환경, 그리고 자신의 얼굴까지 마주해야 때문이다. 특히, 제대로 된 작품 사진을 찍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혼돈’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하고 연결돼 있다. 오직 그것만이 계속된다는 진리를 직면하라는 메시지로서 말이다.
“우주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우주는 다양한 세계가 겹쳐 구성되는 하나의 세계니까요.” 전시는 6월 28일까지.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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