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人터뷰] 0원으로 2년 동안 세계여행한 박정미씨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5월호 기사입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농담은 거짓말이 아니다. 공과금, 방세, 식비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인이라면 (생존에 필요 없어도) 최소한의 품위를 유자히기 위한 재화는 구매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과 벌이 없이 살 수 있을까’란 진지한 물음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가로 짓는 이유다.

박정미 씨(40)도 무소비의 삶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직장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서 느낀 분노가 계기가 돼 충동적으로 퇴사를 선택했고, 이후 어쩔 도리 없이 무소비의 삶을 실천하며 실업의 위기를 타개해보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14년 10월 31일부터 2년간 ‘0원’으로 유럽 16개국을 여행한다. 여행하면서 지구를 해치지 않으며 소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한국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담아낸 에세이집 <0원으로 사는 삶>를 펴냈다. 이 책은 우리가 노동과 소비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같은 내용의 다큐멘터리 <담요를 입은 사람>의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박씨. 그를 만나러 전남 구례로 향해본다.
“예전에 한국에서 살 때 고민이 많았어요.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 잠을 자는 쳇바퀴 같은 삶이 힘들었거든요. 새 환경에서 새롭게 일하고 싶은 마음에 영국에 간 건데, 오히려 노동 강도는 영국이 한국보다 더 셌어요. 그러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 항의하다 해고 통보를 받았어요.”

지긋지긋하던 회사를 그만두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우울함이 물밀 듯 몰려왔다. 당장 내야 할 월세가 한국 돈으로 150만 원이었다. 그의 수중엔 300만 원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까 고민하며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날이 수없이 반복됐다.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는데 문득 ‘돈이 없으면 돈을 쓰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는 생각이 툭 터져 나왔어요. 사고의 전환이 찾아온 거죠.”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을 본 순간이었다. 그는 무소비의 삶을 하나의 미션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고, 이 미션에 ‘0원살이 프로젝트’라 스스로 이름 붙인다. 그렇게 2년간의 무소비 여정이 시작됐다.
“영국 남서부 서머싯에 위치한 팅커스 버블은 자연 파괴 없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생활을 하는 공동체로 유명해요. 농사로 자급자족생활을 실천할 뿐만 아니라, 오프그리드(off-grid, 전기·가스 등 현대적인 에너지 설비 없이 생활하는 방식)를 실천해요.”
‘팅커(팅커스 버블에서 사는 사람들을 지칭)’들은 집을 지을 때조차 공구 등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작업을 직접 한다. 사과 주스 한 잔을 만들려고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 무거운 구조물에 사과를 넣고 온 힘으로 돌려 즙을 짠다. 박씨는 극단적인 모습의 팅커들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제 여행 목적은 그저 돈 없이 살겠다는 거지, 환경 보호랑은 관련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들과 함께 지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소비 시스템이 기후 재앙, 식량 대란, 에너지 고갈, 물 부족 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알게 됐어요. 뒤집어 말하면, 무소비의 삶이 환경에도 이로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여행의 목적은 여행 도중 조금씩 수정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는 그렇게 환경보호도 여행의 목적으로 삼게 됐다. 런던에서 커다란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거리를 줍는 ‘스킵다이빙’을 할 땐, 동료로부터 ‘매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의 30%가량이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됐다.
그의 무소비 여행은 지구를 해치지 않으며 대안적 삶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배우고, 도움받으며 이어졌다. 마침내 ‘0원살이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끝나자,이 모든 내용을 담아 3년 전, <0원으로 사는 삶>을 발간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서일까. 그의 책은 ‘2022 한겨레 선정 올해의 책’ ‘2023 알라딘 선정 올해의 책’ ‘2023 아시아 북 어워드-올해를 빛낸 아시아의 책’에 각각 선정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서구의 대안적인 삶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종종 저한테 물어봐요. 그런데 배설물로 만든 퇴비, 흙으로 만든 구들장처럼 최근 서구 사회에서 주목하는 대안적 방식들은 머지않은 과거에 우리나라 농촌에서 이미 실천해온 것들이에요. 다들 서양에 대안적 문화를 배우러 가지만, 답은 사실 이미 우리 안에 있어요.”
그는 자연 친화적인 농촌 문화가 현대인의 삶과 단절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전원생활> 독자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무지출 챌린지를 실천해보라고 권했다.
“실천 하고 나면 내가 사는 데 그리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거예요. 돈으로부터의 자유가 주는 해방감이 무척 커요. 저처럼 경제적인 이유로 무소비를 실천했다가, 환경문제에 관심이 생겨 삶이 온전히 달라질 수도 있고요.”
박씨는 자신의 여행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담요를 입은 사람>을 제작해 지난해 ‘제19회 로마국제영화제’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올 하반기,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에서 그의 여행기를 두 눈에 담고 와도 좋겠다.
글 윤혜준 기자 | 사진 임승수(사진가), 박정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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