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제동 건 판사들, 그들에게 배달된 익명의 피자…그 정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재집권한 뒤 행정부와 사법부의 충돌이 잦아지자 신변 위협을 느낀 연방법원 판사들이 스스로 신변 경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 보도했다.
트럼프가 내놓은 과도한 행정 조치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 트럼프가 직접 재판부를 ‘좌표 찍기’하며 비난하고 극성 지지자들이 이에 발맞춰 판사 개개인을 위협하는 사례가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최근 각국에서 행정부가 사법부를 무력화하거나 예속시키려 들면서 삼권분립 근간이 흔들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 삼권분립의 원조 격인 미국마저 그런 흐름에 휩쓸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WSJ에 따르면 지난 3월 연방 판사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반기(半期) 사법부 회의 핵심 안건으로 판사 경호를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린 판사의 신변이 위협받는 데 따른 대책 마련 차원이다.
최근 일부 연방 판사와 그 가족들은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피자 배달을 반복적으로 받는 일이 벌어졌다. 주문자 이름은 동일하게 ‘대니얼 앤덜’로 돼 있었다. 이는 2020년 벌어진 살인 사건의 희생자의 이름으로 당시 어머니가 현직 연방 판사였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또 트럼프가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자녀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 시민권’ 폐지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제동을 걸었던 한 연방 판사는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무장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몰려드는 상황을 겪었다. 협박 일환으로 경찰에 허위 신고하는 ‘스워팅’을 당한 것이다. 이 같은 행위는 판결에 불만을 가진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판사에게 ‘당신이 어디 살고 있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고 협박하려는 목적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판사들은 현재 자신들의 신변 경호를 맡고 있는 연방보안관실(USMS)에 대한 불신감을 표출하고 사법부 내에 별도의 경호 조직을 두는 방안까지 논의했다고 WSJ는 전했다. USMS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법 집행 기관 중 하나로 법원 시설 및 판사에 대한 신변 보호와 수감자 이송 등이 핵심 임무다. 이런 USMS를 판사들이 못 미더워하게 된 것은 이 조직이 연방 법무부의 직속 기관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2기 내각의 대표적인 충성파 각료인 팸 본디 법무 장관이 USMS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졌다. 행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올 경우 해코지당할 수 있다고 판사들은 두려워한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각 주 법원의 판사와 달리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고 상원 인준을 받아 임명돼 삼권분립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인식돼 왔다. 그런 지위가 트럼프 2기 들어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이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책 집행에 제동을 거는 법원 판결을 수용하기는커녕 그 같은 판단을 내린 재판부를 막말로 비난하고, 심지어는 이를 묵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 추방을 두고 벌어진 상황이다.
트럼프는 자국에 체류 중인 베네수엘라인 300여 명이 중남미계 범죄 조직에 연루됐다며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 이들의 수용 의사를 밝힌 엘살바도르로 보냈다. 이후 워싱턴 DC 연방지법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가 이 같은 절차의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며 조치를 철회할 것을 명령했지만 트럼프는 법원 판단을 묵살하고 체류자 추방을 강행했다. 트럼프는 보스버그 판사에 대해 “급진 좌파 미치광이 판사가 대통령 권력을 찬탈하려 한다”며 막말을 퍼부으며 심지어 탄핵까지 주장했다. 그러자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례적으로 탄핵 주장은 부적절하다며 공개 비판 성명까지 냈다.
트럼프가 성소수자·불법 이민자 등의 현안과 관련해 전임 정부 기조를 뒤집는 판결을 내릴 때마다 연방법원 판사들이 가처분 인용이나 효력 정지 등으로 제동을 걸면 트럼프 진영 인사나 지지자들이 법원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3일 매사추세츠 연방지방법원의 앨리슨 버로스 판사가 트럼프가 하버드대에 내린 유학생 금지 조치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후 해당 판사에 대한 신변 안전 우려도 일고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 간 긴장감이 커지면서 삼권분립의 또 다른 한 축인 입법부(의회)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코리 부커 상원 의원은 지난 22일 연방보안관실의 수장을 법무부 장관이 아닌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하고 각급 법원이 자체적으로 판사 경호를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스워팅(swatting)
경찰특공대를 뜻하는 ‘스워트(SWAT· Special Weapons And Tactics)’와 ‘ing’의 합성어. 특정 인사를 협박하거나 골탕먹일 목적으로 ‘테러가 있다’고 허위 신고해 무장 경찰들이 집이나 사무실에 들이닥치도록 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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