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방을 얻다-나희덕

방을 얻다
나희덕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ㅡ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ㅡ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담양, 창평, 지실마을이라는 친근한 지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도시 사람인 화자와 시골 농부 부부의 대비, 조심스러운 표준어와 토속적인 사투리의 대비, 필요할 때 잠깐 한옥에 머물려는 도시 사람과 정성을 다해 평생 한옥을 지켜온 시골 사람의 대비가 정서적 긴장감을 형성하며 기승전결로 힘있게 끌고 간다. 집안의 내력과 추억이 깃든 집에 대한 농부 부부의 애정이 정갈한 마루에서 드러나고, 지금까지 지켜온 정성은 저녁 햇살이 반사될 정도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루에서 확인된다. 필요할 때 잠깐 세들어 살려고 했던 도시인 화자는,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농부 부부의 말 속에 화자의 마음이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그들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내면화한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