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7] 소설이 다리를 놓을 때

문지혁 소설가 2025. 5. 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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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지난 주말에는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앙카라국립대학교에 다녀왔다. 학기 중이라 수업 두 건과 주말을 비워 2박 4일의 빠듯한 일정을 꾸렸다. 이스탄불까지 12시간을 날아가 다시 국내선으로 한 시간 들어가는 먼 길이었지만,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초청 내용은 번역 워크숍과 작가 만남이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는 매년 전 세계 대학을 대상으로 한국 문학 번역 지원 사업을 하는데, 그중 앙카라대학교 한국어문학과가 내 작품을 선정한 것이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팀을 나누어 내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러셀’을 번역하고, 학기 말에 작가가 방문하여 한국 문학과 자신의 소설에 대한 강연을 하고 학생들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목요일 저녁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다음 날인 금요일에 만난 학생들은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했다. 나는 강연을 준비해 갔지만 학생들이 준비한 것은 축제였다. 팀별로 개성 넘치게 번역한 튀르키예어 버전 소설로 작품집을 만들고, 한국식 디저트 가게에서 붕어빵을 준비하고, 소설 속 내용으로 스티커를 만드는가 하면, 소설의 중요한 소재인 ‘캐러셀’(회전목마)을 손수 수놓은 가방을 만들어 선물했다.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은 나에게 쓴 편지를 모은 노트를 주었는데, 거기엔 하나같이 정갈한 한글로 한국 소설을 번역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기뻤다고, 영광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토요일 아침,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면서 나는 이상하게 빚진 기분이 들었다. 가는 내내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고 불평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늦은 밤 혼잣말처럼 써 내려간 소설이 언어도 공기도 다른 낯설고 먼 땅 어딘가에서 공명하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문학이 세계와 세계를 잇는 다리라면, 이번에 그 다리를 놓아 준 쪽은 내가 아니라 튀르키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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