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미래를 그리는 만화가
1965년에 그린 2000년대 미래
달 수학여행 빼고는 모두 실현
‘우주항공의 날’ 맞아 의미 새겨
세상에 만화만큼 재밌는 게 있을까 생각했다. 한글을 뗀 예닐곱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 얘기다. 가난하고 척박했던 시절, 아이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부지런히 수혈해준 건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등의 잡지였다. 특히 만화가 인기였다. 길창덕, 신문수, 이정문, 윤승운 화백의 꺼벙이, 팔팔이, 심술통, 맹꽁이 서당 친구들과 함께 자랐다. 이들 명랑만화의 주인공들은 덤벙대고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어 늘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곤 했다. 소동 끝에 얻는 소소한 승리에 함께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이들에겐 학교와 동네 골목이 세상의 전부였다.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도 제주도도 먼 나라 얘기였다. 이들에게 캉타우와 로봇 찌빠는 골목 끝을 넘어 세계와 우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였다. 캉타우와 함께 북극을 탐험했고 외계인을 만났다. 로봇 찌빠와 함께 북한으로, 미국으로, 또 우주로 날아다녔다. 베이비붐 세대, 우리들의 청년기가 민주화 투쟁으로 상징된다면, 청소년기는 라디오 시대였고, 유년기는 소년잡지와 만화가 채워줬다. 제일 궁핍했던 시절,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캉타우의 아버지, 이정문 화백은 1941년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유년기에 6·25전쟁을 겪었다. 구두닦이, 신문팔이를 하며 어머니, 외할머니까지 여섯 식구를 부양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등잔불 아래 그림을 그렸다. 인왕산 자락에 살았다고 했다. 밤이면 하늘 가득 은하수가 쏟아졌다.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품었던 온갖 상상은 고된 현실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
어느새 여든을 넘긴 원로 화백의 이름이 다시 젊은 세대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군 제대 직후인 1965년에 그린 한 컷 만화가 인터넷을 타고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가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제목으로 상상한 미래에는 태양열 주택, 전기차, 스마트폰을 닮은 소형 TV 전화기, 화상진료와 화상수업 같은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빼곡히 담겨있다. 청소는 로봇이 담당하고, 주방 벽에 걸린 화면에선 오늘의 메뉴가 추천된다. 움직이는 도로는 공항 등지의 무빙워크로 실현된 지 오래다. 이 모든 것을 ‘초가집을 없애자’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상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미래를 그리는 만화가’로 불릴 만하다.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는 일은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쉬워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예를 보자. 1899년 미국의 특허청장 찰스 듀엘은 “발명될 만한 모든 것은 이미 발명되었다”고 말했다. 1943년 IBM 설립자 토머스 왓슨은 “컴퓨터의 세계 시장 규모는 5대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정문 화백이 상상한 것 중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로켓 타고 떠나는 달나라 수학여행’이다. 1969년 인류가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미 배포 큰 꿈을 꿨다. 최근 우주 산업의 발전 속도를 보면 이 역시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만 같다.
반세기 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프로젝트는 현재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로의 누이이자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아폴로의 성과를 넘어 달 장기 체류와 우주정거장 건설을 목표로 한다. 달을 거치지 말고 곧장 화성으로 향하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인류의 화성 이주’를 꿈꾸는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는 내년 말 화성행 우주선, 스타십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먼 우주가 이렇게 훌쩍 다가와 있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였던 나라의 한 청년이 바라봤던 우주, 1970년대 소년잡지 속에서 유영했던 우주보다, 오늘 청년들의 우주는 왠지 더 좁고 단단한 현실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우주항공청 설립 1주년을 맞은 오늘 5월27일은 대한민국 제1회 우주항공의 날이다. 분주한 대선 담론과 팍팍한 현실의 한편에서, 한 노화백이 오래전 던진 꿈 하나가 유독 마음에 남는 날이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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