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검은 해변

2025. 5. 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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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연
죽은 까마귀를 봤어 해변에서 비에 다 젖은 채로 죽어 있는 까마귀를 새의 죽은 이미지를 봤어 죽은 새의 이미지가 아니라 검은 까마귀를 해변을 지나가다 봤어 멀리서 검은 게 보여서 가까이 가니 죽은 까마귀였어 이렇게 큰 새가 죽어 있으니 신기하더라 보다 보니 징그럽더라 죽은 까마귀를 보았다고 나는 네게 말하지 않고 앞서 걸었는데 너는 내게 와서 죽은 새를 보았다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서 나도 봤어 해변에 그렇게 큰 까마귀라니 어둡기도 하지
골목에서 죽은 비둘기를 봤다. 천변에서는 죽은 지렁이를, 시장에서는 죽은 물고기를 봤다. 죽은 닭을, 소를, 돼지를…. 집 안 거실에서는 죽은 꽃을 봤다. 화병에 꽂혀 시취(屍臭)를 뿜어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낯선, 신기하기도 징그럽기도 한 죽음의 현장. 그것을 보고 겪은 이상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비에 젖은 채로 죽어 있는 까마귀를 본 이상 해변은 더 이상 낭만이 넘실대는 바닷가일 수 없다. 까마귀의 죽음은 놀랍도록 거대해져 해변을 잠식하고 만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아마도, ‘나’와 ‘너’ 누구도 그 음영을 피할 수 없는 것. 사는 동안 계속해서 목도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점차로 어두워지는 것. 불행히도, 주변은 온통 검고 순식간에 더 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지난 한 주간 몇 통의 부고를 받았다. 초여름의 신록은 일시에 사그라졌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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