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16) 진주에 살어리랏다
아버지 일찍 여의고 집안 형편 어려워
체육교사 꿈 대신 기술 배우며 자격증 취득
타지로 나가 20여년간 제조업 분야 근무
안정적인 삶 고민하다 마흔에 퇴사 결심져
진주 돌아와 사촌형에게 애호박 농사 배워
첫 농사서 병해충 피해로 매출 반토막
수시로 친환경 농법 공유하며 발전 고민
농장 확장해 연 매출 4억가량 소득 올려
도시에서의 수동적 회사생활과는 달리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농사일 만족
농부들 땀 흘린 결실 제값 받을 수 있게
법인 설립해 안정적 판로 마련 돕고 싶어
운동을 좋아하던 소년은 언젠가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그는 꿈을 접고, 조선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타지에서 보낸 20여 년의 세월. 퇴직 후의 삶을 고민하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건 고향 진주의 흙냄새였다. 도시 생활에 지쳐 막연히 그려보던 고향에서의 삶. 이제 그는 다시 흙을 만지며, 작은 생명의 성장을 지켜보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애호박 농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귀향청년 김기태(42)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기태씨의 인생에는 일찍부터 책임감이 배어 있었다. 부모님은 작은 규모지만 벼, 수박, 오이, 토마토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였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 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홀로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그는 어린 나이에도 가족의 생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꿈이었던 체육교사의 길을 접고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한 것도,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장남이었던 제가 서둘러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을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걸 좋아해서 체육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시급했던 건 가족의 생계였거든요. 그때는 환경을 탓하거나 꿈을 포기한 상실감을 느끼기보다는, 남아 있는 가족을 어떻게든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기태씨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용접 등 기술을 배우며,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에 몰두했다. 누구보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지만, 당시 그에게 그런 시간은 사치에 불과했다. 책임감 하나로 자신을 몰아붙였던 그는, 18살이 되던 해 마침내 취업에 성공하며 진주를 떠났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자, 그 목표 하나만 보고 달렸어요. 젊은 나이에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했죠. 창원에서 엘리베이터 설계·제작 일을 시작으로 조선업 등 제조업 분야에서만 20년 넘게 일했거든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제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니 아쉬움보다는 보람이 훨씬 컸습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뒤로한 채 지켜낸 가족의 안녕은, 기태씨에게 미련보다는 달콤한 보상으로 남은 듯했다. 그렇게 타지에서 흘러간 세월만 22년. 어느 날 문득 퇴직 이후의 삶을 생각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정년을 앞둔 선배들이 하나같이 퇴직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방황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자신도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이후의 삶이 참 암담하더라고요. 기술 하나 믿고 살아왔는데, 그 나이에 써먹을 데가 없으니까 결국 아파트 경비나 개인 창업을 선택하더라고요. 당시 정년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상황이었지만,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일찍 퇴직 이후의 삶을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20년 넘게 창원과 거제를 오가며 조선업에 몸담았던 그는 마흔의 나이에 퇴사를 결심했다. 이후 안정적인 삶을 고민하던 중, 문득 떠오른 건 고향 진주에서의 농사였다. 책임감에 떠밀리듯 등졌던 고향이었지만, 오랜 타지 생활에 지친 그에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은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했다.
“20년 넘게 도시생활을 하면서 늘 자연과 함께하는 농촌에서의 삶을 꿈꿨어요. 정년을 앞둔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꿈에 대한 확신도 커졌고요. 무엇보다 한평생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와 남동생까지, 가족 모두가 고향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렇게 3년 전, 기태씨는 다시 고향 진주로 돌아왔다. 사실 그가 큰 망설임 없이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데는 사촌형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진주에서 일찍이 친환경 애호박 농사를 시작했던 사촌형이 그의 고민을 듣고는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는 곧장 사촌형의 농장에서 일손을 보태며 친환경 농업의 기초를 배웠고, 1200평 규모의 하우스를 임대해 직접 친환경 애호박 재배를 시작했다.
농사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붙고,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애호박이 품질에 확신이 들자 그는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을 통해 토지와 건물을 구입했고, 현재는 농장 규모를 3600평까지 확장했다. 현재 그의 농장 연평균 매출은 4억원 가량. 불과 3년 차에 거둔 성과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배우고 땀 흘린 기태씨의 노력이 있었다.
“3대째 이어진 사촌들의 친환경 농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배울 수 있었던 덕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또 같은 작물이라도 농사짓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시간만 나면 다른 농장에 가서 무임금으로 일손을 거들며 배우기도 했고요. 농업도 점점 현대화되고 있지만, 결국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발로 뛰며 땀 흘려 지은 농사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어요.”
그의 농사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재작년 첫 작기를 시작한 기태씨는 그해 3월 병해충 바이러스 탓에 큰 실패를 겪었다. 보통 한 해 작기 중 수확은 10월 초부터 시작돼 약 9개월간 이어지는데, 당시 병해충 피해로 인해 수확 일수가 절반 이상 줄어들어 매출이 반토막이 난 것이다.
“솔직히 많이 속상했죠.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도 컸고요. 그런데 오히려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결국 농사는 현장에서 부딪쳐야 배울 수 있으니까요. 이후 다시 처음부터 배우자는 마음으로 현장에서 토양 관리, 소독, 나무에 대한 이해까지 하나하나 다시 짚어 나갔죠.”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농장을 찾아 농법을 공유하며 농부들과 더 나은 방향을 함께 고민한다. 또 농업교육시설을 통해 친환경 농업의 이론은 물론, 재무관리, 시스템 자동화, 유통 전략까지 스스로 익히며 농사를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고된 농사일에 지칠 법도 하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그의 신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는 정성을 다해 키운 유기농 작물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애호박은 유기농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서 속상할 때가 많아요. 친환경 농법은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해서 위험부담이 크거든요. 그래서 친환경 애호박 농사를 짓는 농부도 많지 않고, 소비자들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안전한 먹거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만큼 이런 작물에 대한 관심도 분명 커질 거라고 믿어요.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작물들이 많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고향에 돌아와 농부로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크게 만족한다고 전했다.
“도시에서의 수동적인 회사생활과 달리,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만족감을 느껴요. 물론 스트레스도 있지만, 1년 농사만 잘 해내면 금전적인 보상과 시간적인 여유도 따라오니 좋은 점이 훨씬 많죠.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들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안정감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아무리 정성껏 농사를 지어도, 품질 좋은 작물이 경매장에서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한 해 동안 땀 흘린 결실을 경매사에게만 맡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제가 직접 법인을 설립해서 농부들이 키운 작물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안정적인 판로를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진주시 청년정책
일하고 즐기며 머물고 싶은 도시 목표
총 191억 투입해 40여개 지원사업 추진
지역문제 주도적 참여 청년네트워크 운영
정책 제안 활성화·소통 창구 역할 모색도
◇진주시 청년정책= 진주시는 지역사회의 미래와 청년세대의 활력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며,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는 기반 마련에 힘쓰고 있다.
시는 ‘청년이 일하고, 즐기며, 머물고 싶은 도시’를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일자리 창출, 창업 및 취업 지원, 주거 안정망 확충 등 청년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고자 19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40여 개의 청년 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대학생 행정인턴사업 △청년 여성 일경험 지원 △창업기업 신규고용인력 보조금 지원 등 실질적인 일자리 지원을 통해 청년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사회 진입을 돕고 있다.
또한 청년들의 자기계발과 복지를 위한 △4차 산업혁명 청년 스마트 교육 △자격증 응시료 지원 △중소기업 청년 복지지원금 등 다양한 교육 및 복지 정책도 마련돼 있다. 주거 안정을 위해서 △청년주택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 등을 통해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사업으로는 △미혼남녀 인연 만들기 △결혼축하금 △출산축하금 △출산하모 행복꾸러미 전달 △첫만남 이용권 지원 등이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 조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진주시 청년네트워크’를 운영 중이다. 이 네트워크는 청년 정책 제안 활성화와 함께 교류 및 소통의 대표 창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진주시 청년정책 관계자는 “청년들이 지역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성장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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