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백성의 고된 삶 위로하는 나무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백성의 고된 삶을 위로하기 위해 한 관리가 심고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키운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이름까지 아예 ‘위민정(慰民亭)’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푸조나무다.
나무 나이 500년을 헤아리는 이 푸조나무는 조선 영조 때 이 고을의 도호부사를 지낸 전천상(田天祥·1705~1751)이 ‘고된 노동에 지친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심은 나무다. 농사일에 지친 백성이 잠시라도 나무가 드리우는 싱그러운 그늘에 들어 편히 쉬게 하려는 뜻이었다.
하동 지역의 대표적 자연유산인 ‘하동 송림’을 처음 조성한 인물이기도 한 전천상은 백성의 살림살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몸소 느끼고 그 불편을 더 빠르게 해소하고자 애썼던 너그러운 관리로 칭송받았다.
그가 심은 이 나무는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이제 높이 25m, 가슴높이 줄기 둘레 4.5m의 큰 나무가 됐다. 특히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나뭇가지가 이룬 수형이 아름다워, 산림청에서 1996년 보호수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하동 평사리 위민정 푸조나무’는 관광지로 조성한, 소설 <토지>의 주요 무대인 최참판댁으로 들어서는 초입의 상가 뒤편으로 이어지는 골목 안쪽에 우뚝 서서 멀리 악양 들판을 내다보고 서 있다.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는 나무의 경관이 빼어나지만 별다른 안내가 없어, 최참판댁을 찾아온 관광객들조차 그 존재를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한때 나무 앞에는 ‘위민정’이라는 이름을 새긴 표지석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보호수 안내판만 남았다. 더불어 애초에 이 나무를 심은 옛 관리의 선한 뜻이 차츰 희미해지는 건 아쉽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더 잘 살필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날이 코앞이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맞이한 선택의 날을 앞두고 오래전에 이 땅의 사람살이를 더 살갑게 살핀 한 관리가 백성을 위해 남긴 한 그루의 큰 나무를 더 소중히 떠올리게 되는 요즈음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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