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대학생의 죽음…청년의 희생은 당연하지 않다 [왜냐면]

한겨레 2025. 5. 26. 19:2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경남 합천군 3층짜리 돼지농장에서 불이 나서 실습 중이던 대학생 1명이 목숨을 잃고, 돼지 1만3천여마리가 죽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이다영 | 포항시의원

대선 후보들의 청년 관련 공약을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 청년들은 참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겠구나 싶다. 일자리, 주거, 문화, 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청년들을 챙기겠다고 약속하니 말이다. 그러나 지난 19일 국립한국농수산대 학생의 실습 중 사망 사고를 보고 현실과의 괴리감에 씁쓸해졌다. 한 돼지농장에서 지난 3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장기 실습 중이던 2학년생이 불이 나 숨진 것이다.

미래 농업의 주역이 될 젊은 인재가 꿈을 펼치기도 전에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개인의 불운을 넘어 청년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위험한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음을 시사한다. 값싼 노동력으로 청년들을 활용하고, 안전과 기본적인 노동 조건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실습 현장의 낡은 관행은 이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실습 현장에서 청년들이 겪는 위험은 한두건의 사고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론 보도와 국회 자료 등을 종합해 보면, 최근 몇년간 교육·서비스 분야 실습 현장에서 청년들의 사망과 부상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에는 제주 생수공장에서 특성화고 실습생이, 2020년 목포해양대 실습생이, 2021년 전남 여수의 요트 선착장에서 특성화고 학생이 숨지는 등 농업 분야뿐만 아니라 건설 현장, 공장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안전 장비 미비, 충분한 안전 교육 부재 등으로 인해 실습생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사고를 당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사고들이 ‘경험 부족으로 인한 불가피한 사고’ 혹은 ‘성장의 과정’이라는 안일한 인식 속에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의 안전과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간호학과 학생들의 병원 실습이나 사범대학 학생들의 교생 실습과 같이 교육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여겨지는 실습 현장에서 대학생들은 기본적인 노동 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정당한 보수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거나, 교육적인 목적보다는 단순 업무 보조 인력으로 활용되는 등 ‘소모품’처럼 취급받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 실습생들은 숙련된 의료진의 지도 없이 단순 업무로 내몰리며, 미래의 교육자를 꿈꾸는 교생들은 행정 업무 지원에 급급하여 정작 중요한 교육 경험을 제대로 쌓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처럼 열악한 실습 환경은 청년들의 성장과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의 중요한 인적 자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청년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낡은 실습 현장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다. 정부는 실습생 안전 관리 및 감독 시스템을 강화하고, 사업주와 교육기관에 안전 교육 및 환경 조성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부여해야 한다. 또한, 실습생들에게 합당한 노동 조건과 보상을 제공하고, 부당한 처우나 노동력 착취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특히, 간호 실습, 교생 실습과 같은 교육 과정 내 실습에 대해서도 명확한 노동 기준을 적용하고,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사회 전반적으로 청년들의 안전과 권익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인식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립한국농수산대 학생 사망 사고는 우리 사회에 청년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청년들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실습 현장의 안전 보장과 노동 환경 개선을 최우선으로 하는 청년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사회의 주역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청년들에게 교통비를 할인해 주고 문화바우처를 발급해주기 전에 자신의 꿈을 펼쳐야 할 곳에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더 이상 청년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청년들의 죽음을 방치하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