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원전 르네상스…다시 주목받는 대구·경북
대구 기계·부품 강소기업, 원전 기자재 수출 기회 확대 기대

미국이 2050년까지 원전을 300기 이상 건설하겠다는 '초대형 원전 확대 전략'을 선언하면서, 경북 동해안 원전벨트와 대구의 기계·부품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탈원전' 기조로 위축됐던 지역 에너지산업이 재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자국 내 원전 수를 현재의 4배 수준으로 확대하는 에너지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는 세계 원전시장의 흐름을 근본부터 바꾸는 선언이자, 차세대 원전 수출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대구·경북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다.
경북은 이미 한국 원전산업의 중추 지역이다.
경주(월성), 울진(한울), 영덕(천지원전 예정지)을 따라 형성된 동해안 원전 벨트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비롯해 관련 협력업체와 연구시설이 밀집해 있다. 전력 생산뿐 아니라 설계·운영·인력 양성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생태계가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해외 수출형 원전 프로젝트의 전초기지로 손꼽힌다.
특히 한국형 차세대 원전인 APR1400과 최근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 SMR(소형모듈원전)의 개발과 실증경험은 경북이 주도해 왔다. 미국, 체코, 사우디 등 주요 원전 수요국과의 협상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경북의 기술력과 인프라는 수출 경쟁력의 핵심자산이다.
대구 역시 이번 흐름에서 빠질 수 없다. 고정밀기계가공, 제어기술, 내열금속 가공 등 원전 기자재 핵심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들이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전 수출이 확대되면 수천 개의 기자재 공급이 필요해지고, 이때 대구의 뿌리 산업이 본격 참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기술평가원 관계자는 "SMR의 경우 기존 대형 원전보다 설계 유연성이 높아, 대구의 중소 제조기업들이 특정 모듈이나 부품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대구 기업은 한수원과의 협업을 통해 원전 부품을 공급 중이며, 향후 해외 프로젝트 참여도 추진 중이다.
경북대, 포스텍, 동국대 경주캠퍼스 등은 원자력공학 및 에너지 관련 학과를 운영하며 꾸준히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경북·대구의 기술대학들이 향후 원전 수출국 현지 교육, 운전훈련, 시운전 컨설팅 등의 역할을 맡게 될 경우, 단순 산업 수혜를 넘어 지역 대학의 글로벌 위상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 원자력연구소 관계자는 "SMR 수출이 본격화되면, 현지 운전 인력 교육과 기술 이전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지역 대학과 연구소가 국제 파트너십에 포함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미국의 원전 대전환 선언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다. 향후 수십 년간의 글로벌 에너지 질서를 새로 짜는 서막이며, 이에 따라 대구·경북 지역도 산업전략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원전 수출은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설계부터 운전·유지보수·훈련까지의 종합 패키지 산업"이라며 "이 산업의 중심지로 이미 기반을 갖춘 곳이 바로 대구·경북"이라고 강조했다.
'탈원전·친원전'의 정쟁 구도를 넘어서, 실질적 준비가 이뤄지는 지역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점이다. 경북과 대구가 다시 한번 국가산업의 전면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