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멈추면 죽는다던 고인의 말, 유언처럼 맴돌아요”
[짬] ‘세종보 천막농성 365일’ 다큐 만든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

“말 없는 강도 말을 한다. 강이 녹색빛을 띠는 건 숨쉬기 힘들다는 뜻이다. 물이 구르면서 뒤섞이는 여울목, 공기를 머금은 윗물이 아래쪽으로 자맥질하는 건 들숨이다. 산소를 잃은 아랫물이 위로 올라오면 날숨을 쉰다. 강이 은빛으로 빛나는 건 숨을 쉬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0일 유튜브에 공개된 미니 다큐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www.youtube.com/watch?v=82oS7DXdef0)를 기획·연출한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는 다큐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다큐는 김 기자가 지난 1년 동안 세종보 천막농성 현장을 성실하게 기록한 결과물이다. 지난해 4월29일 윤석열 정부의 세종보 재가동 시도를 막기 위해 지역 환경단체들은 세종시 금강변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세종보 상류 800m 지점, 흰목물떼새와 꼬마물떼새가 번식하고 있는 모래톱 맞은편 강가였다. 천막농성장은 비, 바람, 더위,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금강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곳엔 늘 김 기자도 있었다.
1년간 매일 농성장 찾아 글·영상 기록 강의 생명 지키는 사람들 차분히 조명
선착장 운영 김영준씨, 인터뷰 뒤 사망
“녹조 창궐해 사업 망하고 간암 투병”
김 기자는 ‘4대강 사업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긴 시간 천착해왔다.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 김 기자는 독일, 네덜란드로 가 공약 검증 보도를 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시절(2008∼2012년)엔 최병성, 김종술 등 시민기자들의 4대강 현장기사를 앞세우고, ‘현장 편집국’이란 이름으로 본인이 4대강 기획취재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부사장을 거쳐 2018년 다시 현장기자로 복귀한 뒤엔 12년 동안 취재한 기록을 바탕으로 책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을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을 만들었다.
이후로도 김 기자는 세종시에 있는 환경부를 출입하며 4대강 관련 취재·보도를 꾸준히 해왔다. 지난해 세종보 천막농성이 시작된 뒤엔 거의 매일 금강 천막을 찾아 그 과정을 꼼꼼히 글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지난 19일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 기자는 “작품을 만들려 기록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아니었어요. ‘삽질’을 만들 때 기록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이후론 ‘어찌 되든 일단 기록해두자’는 생각으로 영상을 찍고 있어요. 매일 기록한 걸 유튜브 채널(환경새뜸TV)에 올리다가, 천막농성 1주년 앞두고 기획기사를 고민하다 영상 다큐까지 만들게 된 거죠.”

녹색알, 강의 지문, 조용한 살인자, 강의 귀환, 슬기로운 천막생활,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 등 6개 이야기로 이어지는 약 57분 분량의 다큐는 김 기자의 시선을 따라 강의 생명과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을 차분히 조명한다. 그러면서 왜 그들이 금강에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는지, ‘강은 흘러야 한다’는 그 간절함의 이유는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다큐에는 김 기자가 지난해 5월 만난 고 김영준(당시 49)씨의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영준씨의 금강 선착장 사업은 세종보 건설 뒤 녹조가 창궐해 결국 망했다. 김 기자를 만난 영준씨는 “슈트 입고도 물에 아예 못 들어갔다. 발진·고름이 생겼다. 녹조가 입에 들어오면 ‘웩’하고 구토를 했다”고 했다. 녹조에서 발생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은 청산가리보다 최대 6천배 이상 독성이 강하다.
“간암·간경화 투병 중이던 김영준씨는 두달 뒤 세상을 떠났어요. 인터뷰 말미에 ‘할 말이 없냐’고 묻자, ‘물은 흘러야 합니다. 멈추면 죽어요. 그게 강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영준씨 그 말이 지금도 유언처럼 귓가를 맴돕니다.”
2007년 이명박 공약 검증 시작으로 편집국장 시절 ‘4대강 기획’ 진두지휘
12년 취재기록 바탕 책·영화 만들어
김 기자가 목격한 세종보 천막의 365일은 어땠을까? 그는 “맞은편 모래톱 알에서 부화해 날아가는 흰목물떼새 보면 어찌나 경이롭던지요. 그 순간 되레 강의 생명체들이 천막농성장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수많은 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이 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 걸지도요. 그래서인지 풍찬노숙을 하는 천막의 활동가들도 즐겁고 발랄한 웃음을 잃지 않더라고요. 그 모습이 참 좋았어요. 계속 나아가, 진짜 뭔가를 지켜낼 것처럼요.”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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