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로 넘어선 자립 강박증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5. 5. 2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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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영 | 자립준비청년

나에게는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남들에게 잘 말하지 못하는 증상이 있다. 바로 ‘자립 강박증’이다. 자립 강박증이란 혼자서 잘해내야만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아등바등 해결하려는 상태다. 실제 사전적인 의미는 없지만 자립준비청년으로 살아오면서 오래 앓은 증상이며, 여전히 잘 고쳐지지 않는다. 최근 취업을 하면서 나의 증상이 다시금 선명하게 드러났다.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된 뒤 ‘혼자서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처음 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서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부탁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오랜 보육원 생활로 체화됐다. 보육원에 계신 선생님보다 아이들의 수가 훨씬 많았기에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일상생활 속 대부분을 스스로 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도 말이다. 오랜 시간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보니 스스로 하는 것이 익숙해지다 못해 ‘혼자서 해야 한다’는 사고로 이어졌다. 또 단체 생활 속에서 길러진 승부욕과 자존심 때문에 어떤 일이든 못하면 안 되고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뒤따랐다.

퇴소 뒤에는 부담감이 더 깊어져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보육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립 이후에는 모든 결정과 그로 인한 책임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툰 나의 모습을 들키기 싫어 주변의 도움을 청하거나 부탁을 하지 않고 혼자 끙끙대며 해결하려고 했다. 결과는 뻔했다. ‘나를 지키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는 다짐은 나를 갉아먹는 강박이 되었고, 거울 속 나는 늘 지쳐 있었다. ‘혼자서도 잘 살아야지’로 시작한 당찬 포부가 결국 자승자박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자립이 정말 홀로 버티는 것일까? 지금의 나에게 다시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서로 주고받은 위로와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지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실수해도 괜찮다는 동료의 말, 이러한 소소한 관심과 응원들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자립 초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 취업이라는 새로운 상황 앞에서 다시 ‘혼자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도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에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솔직하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나누다 보니 혼자만의 싸움이라 여겼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고, 자립에 대한 강박도 다시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자립이 단지 개인의 의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과 지원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외국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은 보호종료 청소년이 이사하면 7일 이내 상담사가 방문해 집 상태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까지 확인한다. 이후에도 8주마다 방문하며 주거 환경과 생활을 지속적으로 살핀다. 독일은 자립의 기준을 경제, 직업, 주거를 넘어 사회적 관계, 시민사회 참여까지 확장한다. 단순히 경제 활동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와 연결된 삶을 중시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자립의 한 부분으로 고려한다. 우리 사회에도 자립을 혼자 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의 연결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자립은 더 이상 혼자만의 버팀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힘을 키워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나처럼 자립 강박을 겪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도 누군가와 연결될 용기를 내보면 좋겠다. ‘같이’라는 말이 자립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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