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미국 입장에서 본 원화값 상승
엔화값 상승으로 日 타격
트럼프 환율협의 추진땐
中·日보다 한국이 불리
결국 실물경제 회복 중요

지난 4월 24일 미국에서 개최된 한미 간 '2+2 통상협의'에서 환율정책은 한국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별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한미 양국의 외환 당국자가 5월 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나 외환시장 운영 원칙에 관해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스티븐 미런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작성했던 소위 '미런 보고서' 등을 토대로, 시장은 미국이 지속적인 원화절상을 요구할 것으로 추측한다.
스티븐 미런 위원장의 보고서에 등장하는 마러라고 합의는 플라자합의를, 현시점의 원화절상은 당시 엔화절상을 연상시킨다.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환율은 연평균 달러당 248엔에서 1987년 128엔으로 하락했다. 불과 2년 만에 일본산 제품 가격과 일본의 자산 가치가 동시에 두 배로 폭등했다. 일본산 제품 가격의 폭등은 제조업 공동화를 야기했고, 실물 경기를 급격히 둔화시켰다. 한편 엔고는 자산 가치 폭등이라는 거품을 양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물 경제 부진 속에 자산 거품이 생성됐다. 1989년 일본은행이 통화 정책 방향을 '유동성 공급'에서 '자산 거품 대응'으로 선회함에 따라 199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촉발됐고, 그것을 기점으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에 진입했다. 당시 엔화절상은 일본 경제의 원자폭탄이었다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혹자는 플라자합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계 외환시장이 커진 만큼, 현시점에서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제2의 플라자합의를 추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소비재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 특성상,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직결되는 약달러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미런 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약달러는 무역 적자 해소와 제조업 투자 유치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굳이 모든 통화 대비 약달러를 추진할 필요 없이, 선택적으로 개별 통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기축통화보다는 비기축통화 절상이 역효과가 작은 측면도 있다. 이는 다자간 합의보다는 양자 간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도 일치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이나 중국에 인위적 통화 절상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채에 대한 투매를 야기하거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반면 미국으로의 수출이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몇몇 품목에 집중된 한국이나 대만 등은 소비자물가 상승의 역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통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 국가들로부터 더 많은 제조업 생산을 이전받고,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실제 미국은 미·일 간 협상에서는 환율을 의제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우리와의 협상에서는 환율 관리 협의체 구성을 관철시켰다. 요구 수준이 관건일 뿐, 원화절상 요구를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를 돌아보면, 최근 몇 년간 투자는 부진했고 성장은 둔화됐으며, 국내 생산은 점차 해외 생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대출연체율 상승 등 유동성 부족의 신호도 포착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화절상 기대가 반영되면, 제조업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자산 거품이 생성될 수 있다. 플라자합의 당시 일본처럼 환율 협의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 국내 유동성 공급과 동시에 거품 형성을 차단해야 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부동산 투자가 아닌 국내 설비 투자를 활성화해 내수를 진작하고 실물 경제 순환을 회복해야 한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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