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 그리고 사람들

서울문화사 2025. 5. 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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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손을 잡고 <론 뮤익> 전을 개최했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인간, 산처럼 쌓여 있는 거대 해골들. 론 뮤익은 현실적인 묘사와 비현실적인 규모로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그가 남긴 진짜 예술은 그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론 뮤익은 마네킹 만드는 사람이었다. 1958년 호주에서 태어난 그는 영화와 TV 쇼에서 필요한 소품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성공한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 론 뮤익에게도 귀인이 찾아왔다. 1996년 포르투갈의 시각예술가 파울라 레고의 의뢰를 받고 조각 ‘피노키오’를 만들며 본격적으로 조각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신작 ‘죽은 아버지’(1996~1997)가 런던 왕립미술원에 전시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론 뮤익의 등장은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감탄을 넘어 경악스러울 정도의 사실적 묘사, 비현실적인 감각을 선사하는 거대한 규모. 관객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조각 앞에서 저마다의 내면에 있던 불안, 외로움, 무기력함을 마주해야 했다.

론 뮤익은 다작하는 작가가 아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48점에 불과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론 뮤익은 살갗 아래 비친 핏줄과 아주 세밀한 주름 하나까지 고스란히 묘사한다. 이런 노력은 조각상이 단순히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넘어, 관객이 거울 앞에 선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론 뮤익이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주목받는 시대에 론 뮤익이 고집하는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의 역할과 몫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론 뮤익의 여러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는 매우 드물다. 크기 때문이다. 론 뮤익의 대형 마스크 조각 시리즈 중 하나인 ‘마스크 II’(2002)는 실제 크기의 약 4배로 완성됐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침대에서’(2005)는 세로 162cm, 가로 650cm, 너비 395cm 규모로 완성됐다. 이렇듯 커다란 조각상들은 운반이 매우 까다로워, 한날한시 같은 공간에 모으는 것이 무척 어렵다. 그 드문 기회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만들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2025년 이 두 기관은 함께 손을 잡고 <론 뮤익> 전을 개최했다. 전시 기간은 7월 13일까지. 이번 전시는 그 의미도 남다르다. 론 뮤익의 대표작들은 물론,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작품들이 포함됐다. 규모 역시 아시아에서는 역대 최대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주목받는 시대에
론 뮤익이 고집하는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의 역할과 몫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익숙함 속의 생경함

<론 뮤익>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5·6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장대한 스케일로 명성을 얻어서일까. 첫 번째 전시 공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크기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이 대표적이다. 여느 론 뮤익의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세로 170cm, 가로 183cm, 너비 120cm 크기로 실제 사람보다 작게 완성됐다. 여인은 나뭇가지 뭉치를 들어 올린 채 허리를 잔뜩 젖히고 있다. 그가 방금 막 나뭇가지를 주워 올린 것인지, 혹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춘 것인지는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미간을 찌푸린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 부드러운 살갗에 생긴 생채기만이 서사를 암시할 뿐이다. 작품 아래에는 어떤 설명도 없지만, 관객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기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치킨 / 맨’(2019)은 더욱 강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주인공은 백발노인과 새하얀 닭이다. 이들은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바라본다. 아니, 노려보고 있다. 어째서인지 노인은 덜렁 속옷 한 장만 입고 있으며, 닭은 입을 앙다문 채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눈싸움’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듯싶지만, 작가는 ‘치킨 / 맨’이라는 단순한 제목만으로 설명을 마친다. 이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양쪽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치킨 / 맨’ 역시 의도적으로 크기를 작게 만들었다. 관람객들이 조각상 옆에 섰을 때 자연스레 눈높이가 맞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아무리 오래 쳐다보아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저 저마다의 상상으로 다음에 펼쳐질 상황을 가늠해볼 뿐이다.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어떤 정답도 오답도 없다.

‘매스’(2016~2017)는 이번 전시의 절정이다. 제목에 걸맞게 해골을 총 100개 쌓아 올려 완성했다. 해골 하나하나의 크기 역시 범상치 않은데, 그 높이는 성인 남자의 허리에 닿을 정도다. 얼핏 보기에는 해골들을 그저 차곡차곡 쌓은 것 같지만, 작가는 전시 때마다 철저히 계산을 거쳐 해골들의 위치와 높이를 전시 공간에 맞추어 새롭게 배치한다. 제목 역시 단순하지 않다. 원제목인 ‘MASS’는 영어로 더미, 무더기, 군중을 뜻하지만, ‘종교의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론 뮤익은 이 작품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중의적인 제목이 의도한 대로, 우리는 거대한 해골 더미 앞에서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6 전시실 아래에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기다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널찍한 암실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고티에 드블롱드가 론 뮤익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사진 열두 점과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이 전시된다. 드블롱드는 2005년부터 영상과 사진으로 그의 작업물을 기록해왔으니 론 뮤익의 가장 충실한 증인인 셈이다. 론 뮤익의 스튜디오 한편에서 드블롱드가 남긴 또 다른 작품들을 통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진 ‘가짜 인간’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치킨 / 맨’이 론 뮤익의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해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로 보내지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단편영화 <치킨 / 맨>을 최초 공개한다. 지금은 3D 프린터가 사람의 손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오브제를 만들고, AI가 몇 초 만에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고스란히 베끼는 시대다. 그러나 론 뮤익은 여전히 작업실에서 홀로 시간을 연료로 태워가며 두 손으로 조각상을 만들고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론 뮤익이 남긴 진짜 예술은 그 과정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몫

창립 40주년을 맞아 프랑스 파리에 새롭게 문을 열 공간을 미리 살펴봤다.

이번 <론 뮤익> 전시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마련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1984년 창립했다. 재단은 전 세계의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정신과 연결된 이슈를 조명하는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가와 신진 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예술 활동의 핵심으로 자리하는 것. 둘째는 회화, 사진, 건축, 영화, 디자인, 패션 등 분야를 막론하고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서 활약할 것. 마지막 셋째는 메종 까르띠에의 상업적 이해관계와 엄격하게 구분 지어 활동할 것. 그렇게 40년을 보내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재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창립 40주년을 맞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올해 10월 새 둥지를 연다. 장소는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 이곳은 나폴레옹 3세가 주도한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855년 ‘그랑 오텔 뒤 루브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건물의 새 단장을 맡은 건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토록 특별한 곳으로 무대를 옮기는 것은 그 위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새로운 창의성의 형식을 내포한다. 이때 발명이란 금속이나 돌 같은 소재처럼 두 눈으로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앞으로 가장 차별화된 공간을 제공하고 가장 다채로운 전시 형식과 관점을 제시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전시라는 행위의 시스템을 새롭게 전환하여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건물은 파리 시민이 자연스레 건물을 통과해 도심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머지않아 파리 시민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이자, 예술가들의 보금자리가 될 장소다.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er : 남기용 | Images : 론 뮤익, 국립현대미술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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