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에서 탄핵 시국과 고뇌하는 개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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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화가 박세진(48)씨는 지난 1월8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서울 낙원동에서 벽화를 그리는 데 매달렸다.
서울 낙원상가 4층 실버극장 옆에 자리한 대안전시공간 디피(d/p)로 나날이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얼룩을 수없이 겹쳐 짓이긴 듯한 색면 회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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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화가 박세진(48)씨는 지난 1월8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서울 낙원동에서 벽화를 그리는 데 매달렸다. 서울 낙원상가 4층 실버극장 옆에 자리한 대안전시공간 디피(d/p)로 나날이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얼룩을 수없이 겹쳐 짓이긴 듯한 색면 회화를 그렸다.
이달 열린 그의 개인전 전시장이기도 한 디피에서 벽화를 그리는 시기에 낙원상가 일대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들로 시끌시끌했다. 나라를 들썩거리게 한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낙원동 바로 북쪽 안국동 헌법재판소에서 4월 초까지 진행되면서 찬반 시위대의 격렬한 시위와 행진이 상가 앞까지 이어졌고, 구호와 욕설 등으로 소란이 끊일 새가 없었다.
디피에서 이달 초부터 열리고 있는 박 작가의 개인전 ‘합판을 깨지 않고’(31일까지)에서 선보이는 그의 신작 벽화와 합판 회화들은 지난 넉달간 이곳에서 작업하는 작가 주변을 휩싸며 벌어진 다기한 시대적 사건의 느낌과 기운을 담고 있다. 공간의 벽면과 그 벽면을 배경으로 이동식 부착 용기에 부착되거나 맞은편 벽면에 내걸려 펼쳐지는 또 다른 합판 회화들은 허옇고 거뭇하거나 검회색, 푸른 빛 등을 띠는 수많은 색채의 얼룩들이 원래 얼룩이나 흔적이 남은 벽면과 합판의 표면을 배경으로 진창처럼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이동식 부착 용기에 붙은 그림은 작가가 작업한 벽면 옆 창으로 보이는 실버극장의 해진 포스터와 간판이 어르신들이 앉은 모습과 함께 묘사된 인상파적인 풍경화이기도 하다. 넉달 동안 이 시공간에서 작가가 겪고 느꼈던 개인적 심경과 고뇌, 시선을 담은 독특한 역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0년 이상 탐구해온 합판은 작가가 평소 다른 그림을 그릴 때 받침틀로 사용하면서 여러 안료와 작업의 흔적들이 남았던 화판들이기도 하다. 여기에 덧칠해 그린 작업들은 작가가 그린 회화와 재료, 도구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묻는 의문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전시를 앞둔 작가한테 전시할 공간을 넉달간 내어주는 경우는 드물어요. 저는 이런 기회를 잡은 뒤 지난해 겨울부터 이 공간의 벽들에 남은 지난 세월의 흔적들을 연구하고 눈에 담아뒀지요. 그리고 나서 그 위에 넉달 동안 내가 벽화를 작업하면서 겪게 된 탄핵 시위 같은 시공간의 상황들을 희고 검은 얼룩 같은 것들로 표현하게 된 겁니다. 그림 그리면서 이 공간에서 느낀 나의 내면 정서 심리를 그대로 표현한 거지요. 그리는 내가 현장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이 그림 속에 물감들로 묻어나 드러난 것이지요.”
작가는 1월부터 석달 가까이 불안과 격정 속에 탄핵 시위대가 작업 공간 주위를 지나가고 집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원래 흰빛으로 말끔했던 벽면 화폭이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눈이 녹은 진창길처럼 불규칙한 검회색빛으로 변해갔다. 작가는 “내가 겪은 역사적 시공간을 잘 보이게 하는 게 진짜 탄핵을 겪은 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 그림을 잘 보이게 하는 것보다, 내 4개월 동안 느낀 시간을 관객들에게 온전히 돌려주고 싶었지요. 벽화를 그리려 출퇴근하는 것도 예외적이고, 탄핵 사태가 일어나고 작업 공간 근처에 어둡고 불안한 기운과 밝은 희망의 기운이 함께 번갈아 드나드는 강렬한 체험을 느낀 것도 특별했기 때문에 그랬지요. 그런 기운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계속 고민을 거듭했어요.”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독특한 표현주의적 화풍으로 2000년대 이래 한국 현대회화판에서 주목받아왔다. 진정성 있는 시선으로 시대적 환경에 대한 고뇌를 독특한 얼룩으로 담은 신작들은 선정적 상업주의에 침윤된 지금 화단에서 보기 드물게 회화의 본령을 보여주는 수작들이라 할 만하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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