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가 못 낮추는 CB 발행 잇따라... 투자자는 불안하겠지만 주가엔 호재

조은서 기자 2025. 5. 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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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스닥 상장사들이 리픽싱(시가 하락에 따른 전환가액 조정) 조건이 없는 전환사채(CB) 발행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리픽싱 없는 CB는 주가가 하락해도 전환가액이 고정돼 있어 CB 투자자는 주가가 전환가액 이하로 떨어질 경우 주식 전환은 포기해야 한다.

리픽싱 조건이 없는 CB에 투자한다는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가 전환가액 이상으로 오를 것을 기대하며 ‘베팅’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주가 상승 여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아울러 기존 주주 입장에선 일반 CB와 달리 지분 희석 우려가 크게 줄어들어 호재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일러스트 = 챗GPT 달리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테고사이언스는 이날 리픽싱 조건이 제외된 270억원 규모의 CB 발행을 결정했다고 정정공시했다. 전환가액은 1만7713원으로, 전환 시 전체 발행주식의 15.99%에 해당하는 152만주가 새로 발행된다.

코스닥 상장사의 리픽싱 조건 없는 CB 발행은 작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과 9월 애니플러스와 대봉엘에스에 이어 올해 들어서는 1월 인벤티지랩이 테고사이언스에 앞서 리픽싱 조건을 제외한 CB를 발행했다.

리픽싱이란 CB를 발행한 기업의 주가가 하락하면 이에 맞춰 CB 전환가액을 조정해 주는 것을 말한다. CB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CB 투자자는 기업 주가가 떨어지면 이에 맞춰 전환가액을 낮추면서 동시에 전환 가능 주식 수를 늘려 수익률을 방어할 수 있다.

통상 기존 주주는 리픽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리픽싱으로 전환 가능한 신주 물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기존 주주 지분율은 희석되기 때문이다. 신주 발행 물량이 늘어나면 주당 가치가 감소하는데 여기에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부담까지 더해져 주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일러스트 = 챗GPT 달리

리픽싱 조건 없는 CB 발행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기업 주가 상승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단 신호로 해석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리픽싱이 없다면 투자자는 불안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주가가 전환가 이상으로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투자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테고사이언스의 이번 CB는 표면·만기 이자율이 모두 0%인 ‘제로금리’ 조건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자수익이 전혀 없어 투자자는 오직 주식 전환 후 시세차익에만 기대야 한다. 주가가 전환가를 밑돌면 원금만 회수해야 하는 만큼 이번 CB는 회사의 미래 가치에 대한 베팅으로 평가된다.

이렇다 보니 리픽싱 없는 CB는 기존 주주에게도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이날 공시가 나온 직후 테고사이언스 주가는 전 거래일(1만7640원) 대비 8.5% 오른 1만915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종가는 4.20% 상승한 1만8380원이었다.

테고사이언스 측은 “주관사인 삼성증권이 현재 회사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했고, 재무건전성과 진행 중인 임상 프로젝트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면서 “이로 인해 투자자에게 다소 불리한 조건의 CB 발행도 무난히 성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리픽싱 조항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리픽싱 조항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특이한 투자자 보호 장치”라며 “리픽싱 조건이 포함된 CB를 둘러싸고 자본과 부채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상황으로, 시간이 갈수록 리픽싱 조항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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