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5억 ‘황제노역’ 논란의 허재호 전 대주회장…국내 송환 중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5. 5. 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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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서 신병 확보…27일 오후 인천공항 도착할 듯
광주지법, 법정 불출석·재판 7년째 지연에 강제구인 착수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세금 탈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고도 해외에 장기간 체류 중인 허재호(83) 전 대주그룹 회장이 국내로 송환 중이다. 강제 송환 중인 허 전 대주그룹 회장은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인물이다. 뉴질랜드서 신병이 확보된 허씨는 오는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수백억원을 탈세하고도 '황제노역'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지난 2014년 4월 4일 오후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를 한 뒤 계열사 피해자들의 항의로 2시간 동안 차 안에 갇혀 있다가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조세포탈 재판' 거듭 불출석에…칼 뽑은 법원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형사11부(김송현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 혐의로 기소된 허씨에 대해 강제구인 절차에 착수했다. 재판부가 허씨의 거듭된 재판 불출석에 국내 강제 송환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해당 재판은 7년 째 지연되고 있다.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는 허씨는 재판이 재개된 지난해 6월 기준, 첫 재판부터 4년10개월 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법원으로부터 구인장 집행을 요청받은 광주지검은 허씨가 머무는 뉴질랜드 현지에서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여권이 말소된 허씨의 강제 송환 절차를 밟기 위해 법무부 관계자들도 검찰과 동행했다. 허씨는 오는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것으로 전해졌다. 

법률 대리인(변호인)만 출석한 재판 과정에서 세금 미납분에 가산금까지 총 10억여원을 납부한 허씨는 강제구인 절차에 순순히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는 2007년 5∼11월 지인 3명의 명의로 보유한 대한화재해상보험 주식 매각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5억여원과 차명 주식 배당금의 종합소득세 650만원을 내지 않은 혐의로 2019년 7월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은 2015년 8월 뉴질랜드로 출국한 허씨가 심장 질환, 코로나19 대유행 등을 이유로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7년째 공전 중이다. 그러자 광주지법 11형사부는 지난해 6월 14일 허씨에 대한 공판에서 "구인영장 발부나 유효기간 만료에 따른 재발부 등 범죄인 인도 절차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허씨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양도소득세, 종합소득세 등을 모두 납부했다'며 납세의무가 종결됐음을 밝혔다. 변호인은 특히 "허 전 회장은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해 귀국할 의사가 있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에 대한 무분별한 고소·고발에 무혐의 처분이 난 경찰 수사 사건도 수사 중지가 이뤄져 귀국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불시 체포 등을 우려해 입국을 안 했을 뿐 해당 사건들이 완료되면 귀국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허재호, '황제노역' 국민적 공분 당사자

허 전 대주그룹 회장은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당사자다. 허씨는 508억원 규모의 세금을 탈루하고 회삿돈 100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2007년 재판에 넘겨져 2011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확정 받았다.

하지만 허씨는 선고받은 벌금 254억원을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가 2014년 귀국, 일당을 5억원으로 환산한 노역장 유치로 '황제노역'이라는 지탄이 들끓었다. 이때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하루, 노역장 닷새 등 총 엿새간 구금으로 일당 5억원씩 합산 30억원의 벌금을 탕감 받았다. 

그 당시 일반적인 노역 일당은 5만원,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4860원이었다. 광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남구 봉선동의 192㎡(58평)형으로 6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거센 논란에 검찰이 노역을 중단시키자 허씨는 엿새간 노역으로 탕감 받은 30억 원을 제하고 남은 벌금 224억원을 그해 9월까지 반년 동안 수십억 원씩 나눠 완납했다. 

그러나 추가 탈루와 재산은닉 등 여러 의혹에 연루된 허씨는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된 틈을 타 2015년 8월 뉴질랜드로 다시 출국했고, 또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에는 지인 3명의 명의로 보유한 보험사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세금 총 5억650여만 원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허씨는 이 사건 재판에 수년째 불출석해 현재 국내 송환 중에 있다.  

지역법관·지역토호 유착 잡음…'향판' 폐지 도화선

 일당 5억 원짜리 '황제 노역' 논란의 중심에는 '지역법관', 일명 '향판(鄕判)'제도가 있었다. 지역법관 제도는 판사가 전국 법원을 돌며 근무하지 않고 대전, 대구, 부산, 광주 4개 권역 관할 법원 중 한 곳에 부임해 10년 이상 근무하는 제도였다.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차단하는 장점이 있지만, 지역 유력 인사들과 유착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도 많았다. 한 지역에서 장기간 판사로 재직하며 지역 토호들과 지연, 학연, 혈연 등으로 얽혀 공정성에 문제가 생기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이른바 '황제노역'이 가능했던 배경에도 1·2심 재판부의 판결이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황제노역 판결로 지탄받은 1·2심 재판부장은 모두 임용 이래 줄곧 광주·전남에서만 근무한 향판이었기 때문이다. 

광주지법 형사2부는 2008년 허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여 원을 선고하면서 벌금 미납 시 하루 노역을 2억5000만 원으로 환산했다. 2심에서 광주고법 형사1부는 벌금을 절반인 254억여 원으로 줄이고, 노역 일당은 두 배인 5억 원으로 늘려줬다. 약 50일간 노역을 하면 254억 원의 벌금이 완전히 탕감되는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대검찰청은 닷새 만에 허씨의 노역형 집행을 중단했다. 

허씨 사건을 필두로 판사와 지역 토호 간 유착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향판 제도는 2015년 폐지됐다. 이로써 29년간 광주지역에서 판사생활을 한 당시 광주지법원장과 같은 향판은 구조적으로 나올 수 없게 됐다. 허씨의 '황제노역' 논란이 사법부의 신뢰를 깨는 사법행정의 '치부'를 도려내는 도화선이 된 셈이다. 

모래성 쌓은 대주(大洲)그룹의 '흥망성쇠'

허 전 회장은 1981년 5월 대주종합건설을 설립하고 건설업에 뛰어 들었다. 허씨가 일군 대주그룹은 그의 사업 수완과 주택사업 호황기를 맞아 급성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광주·전남지역에 아파트를 쏟아내면서 엄청난 돈을 쓸어 담았고 대주건설의 몸집도 크게 불어났다. 1994년에는 건설사 도급순위 전국 52위의 1군 업체로 도약했고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이 됐다. 나날이 성장한 대주는 2000년대에 들어서 전성기를 찍었다. 

그러나 주업종인 건설에만 치중하지 않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나선 것이 몰락의 화근이 됐다. 첫 번째 인수업체는 전남 담양군에 위치한 A제지로 부도난 업체였다. 그 다음은 손해보험사인 B화재, 그리고 전남 해남군에 위치한 중소규모 조선소인 C조선을 인수하게 된다.

허씨는 "기업은 세 발로 버텨야 안전하다"며 "대주그룹의 주력 업종을 건설·제조·금융으로 육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중에서도 제조, 즉 조선업에 거의 '올인' 하기로 하며 C조선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했다. 이에 힘입어 대주그룹은 한때 3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연 매출 1조2000억 원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모래성을 쌓은 것이었을까. 그룹 총수의 사법 리스크와 2007년부터 이어진 부동산 침체 및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등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2007년 허 회장이 탈세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대주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동시에 엄청난 투자금이 들어갔던 C조선은 이익을 내긴 커녕 조선업 불황기가 닥치면서 밑 빠진 독처럼 대주그룹 전반에 자금경색을 일으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주건설 앞에는 미분양 아파트와 PF채무보증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허씨의 대주왕국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마침내 2009년 1월, 은행연합회에서 발표한 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대주건설은 퇴출, C조선은 워크아웃이 확정되면서 대주그룹은 사실상 2010년 공중분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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