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원복’, 다음은 방송3법 차례다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기자 2025. 5. 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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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4월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방송3법 등 방송 정상화 관련 법안의 재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2023년 6월20일치 이 지면에 ‘거대 양당의 TV 수신료 내로남불’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이 수신료를 방송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하는 행태를 꼬집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윤석열 정권이 공영방송 텔레비전(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밀어붙이던 때였다. 돈줄을 죄어 한국방송(KBS)을 권력 앞에 무릎 꿇릴 심산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칼럼을 쓰면서 잠시 이런 ‘못된’ 생각을 했더랬다.(차마 칼럼에 담지는 못했다.) ‘방송 장악이 끝나면 정부·여당이 어련히 알아서 수신료 복원해주겠지 뭐.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이야 반발하지만 한국방송이 정권 수중에 떨어지면 입 싹 씻고 수신료 복원에 반대할걸?’ 그도 그럴 것이, 정치권은 그동안 방송이 ‘남의 편’일 때는 수신료 분리 징수로 겁박하고 ‘내 편’일 때는 선심 쓰듯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칼럼에 그 삐딱한 심사를 드러내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지난달 17일, 수신료를 예전처럼 전기요금에 통합해서 징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내 시니컬한 예상과는 달리 ‘수신료 원복’을 주도한 건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해 6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해,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 거부권을 행사했다.

주목할 것은 국회 재표결에서 국민의힘 의원 20여명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거부권 법안이 다시 국회 문턱을 넘으려면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국민의힘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않는 한 가결은 불가능했다. 당연히 부결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국민의힘은 ‘당론 부결’이 아닌 ‘자유투표’ 방침을 정했다. 22년 만의 거부권 법안 국회 재가결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수신료 정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가 공수를 교대해가며 벌여온 ‘공영방송 쟁탈전’과 궤를 같이한다. 정치권은 정권만 잡으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눈에 불을 켠다. 온갖 꼼수와 무리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윤석열 정권이 문화방송(MBC) 장악을 위해 벌인 기괴한 ‘방송통신위원장 꼼수 사퇴’ 소동을 떠올려보라.

불과 얼마 전까지 여야가 공영방송을 놓고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던 걸 생각하면, ‘수신료 원복’ 법안 통과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돌발 변수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개헌선을 훌쩍 넘는 212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이제 ‘본게임’ 차례다.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송 3법’이 그것이다. 방송 3법은 민주당 주도로 두차례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 재표결에선 국민의힘의 당론 반대에 막혀 부결됐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곧바로 방송 3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별러왔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일도 없을 테니 일사천리일 것이다.

민주당 뜻대로 되면 정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올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민주당의 방송 3법을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이라고 비판해온 국민의힘은 사생결단의 반대 투쟁에 나설 게 뻔하다. 여당이 밀어붙인 방송 3법에 따라 공영방송 경영진이 물갈이되면 또다시 방송 장악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일견 이상적으로 보이는 민주당의 법안이 현실 적용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낳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공영방송 관련 법안은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정치 지형이 바뀌더라도 지속될 수 있다. 합의가 되겠냐고 지레 비관할 필요는 없다. 방송 장악 논란이 본격화한 이명박 정부 이래 여야가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만 족히 50건이 넘는다.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집권 세력이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야당일 때는 방송법 개정을 요구하다 정권만 잡으면 태도가 돌변한다는 점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상대편 정치권력이 ‘자기 사람’을 사장으로 내리꽂아 공영방송을 ‘정권 나팔수’로 만드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답답한 심정 말이다.

‘민주주의 교과서’란 찬사를 받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결정문은 정치권에 관용과 자제를 주문했다. 대선을 맞아 통합의 정치를 갈망하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방송 3법 합의 처리를 통한 공영방송 쟁탈전의 ‘종전’이 그 시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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